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현, 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

[중앙뉴스 칼럼= 박근종]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눈덩이처럼 불어난 자영업자 대출이 빠르게 부실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체액과 연체율이 급증하면서 자영업자 대출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고금리와 경기 둔화, 소비 위축 속 빚으로 어렵게 버텨 왔던 자영업자들이 한계 상황에 이르렀다는 이야기다. 지난 4일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평가정보의‘개인사업자 대출현황’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335만 8,499명의 개인사업자가 받은 자영업자 대출 잔액(가계대출 + 기업대출)은 1,109조 6,658억 원이다. 이는 2022년 말과 비교해 대출자가 8만 4,851명(2.6%), 대출잔액은 27조 400억 원(2.5%) 더 늘어난 것이다.

우려스러운 건 급증하는 연체 규모다. 3개월 이상 갚지 못한 연체 금액은 2022년 말 18조 2,941억 원에서 2023년 말 27조 3,833억 원으로 1년 새 49.7%(9조 892억 원)이나 늘었다. 평균 연체율도 뛰었다. 지난해 평균 연체율은 2.47%로 전년 1.69%보다 0.8%포인트 높아졌다. 질도 좋지 않다. 대출받은 자영업자 335만 8,499명의 절반에 가까운 173만 1,283명이 금융사 3곳 이상에서 돈을 빌려 추가 대출이 사실상 불가능한 다중채무자다. 이들의 대출잔액은 691조 6,232억 원에 이르렀다. 충격에 쉽게 끊어질 약한 고리가 더욱 넓어졌다는 의미다.

다중채무 개인사업자의 지난해 연체액 증가율을 연령별로 살펴보면, 30대가 62.5%(1조 7,039억 원 → 2조 7,691억 원)로 가장 높았다. 이어 60세 이상 58.0%(2조 8,989억 원 → 4조 5,800억 원), 50∼59세 56.0%(4조 4,550억 원 → 6조 9,491억 원), 40∼49세 43.7%(4조 8,811억 원→7조 127억 원), 29세 이하 36.1%(3,561억 원 → 4,846억 원) 순이었다. 특히 연체율은 29세 이하에서 6.59%로 최고였고, 30대가 3.90%로 두 번째였다. 1년 사이 연체율 상승 폭 또한 29세 이하(2.22%포인트)와 30대(1.63%포인트)가 나란히 1·2위를 차지해 20·30대의 젊은 자영업자들이 가장 어려웠다. 영업 규모나 자산 등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젊은 자영업자들이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에 가장 큰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이렇듯 연체율이 급증하는 원인 중 하나는 자영업자 대상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 종료다. 정부는 2020년 4월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대출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를 시행했었다. 만기 연장은 내년 9월까지 미뤄졌지만, 원리금 상환 유예는 지난해 9월로 종료됐다. 정부가 우선 응급 처방으로 꽂아준 만기 연장이란 ‘링거’를 아직 맞고 있지만, 그동안 누적된 대출 부담이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는 국면이다.

문제는 자영업자 대출의 폭발력은 앞으로 더 커질 수 있다. 경기 둔화 속 인건비 상승과 소비 위축, 고금리 등 자영업자가 버티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당시보다 더 나쁘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문 닫는 자영업자가 늘어나며 지난해 ‘노란 우산’ 폐업 사유 공제금 건수는 전년 대비 20.7% 증가한 11만 15건으로 집계됐다. 역대 가장 높은 수치로 이렇듯 건수가 증가하며 공제금 지급액 규모도 사상 처음으로 1조 원을 넘겼다.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액 규모는 2020년 7,300억 원, 2021년 9,000억 원, 2022년 9,700억 원, 지난해는 1조 2,600억 원에 이르는 등 꾸준한 오름세다.

이런 상황에서 ‘빙족방뇨(氷足放尿 │ 언 발에 오줌 누기)’의 미봉책인 대출 만기 연장 등의 지원으로 자영업자의 연명을 돕는 것은 부실 사업자의 퇴출을 막아 문제를 키울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비대한 자영업 시장을 가진 나라가 됐다. 자영업 취업자 비율이 전체 취업자의 23.9%로 OECD 8위다. 미국(6.6%)의 3.6배, 일본(9.8%)의 2.4배에 달한다. 경제 구조가 취약한 중남미 국가들을 빼면 사실상 한국의 자영업 비율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 게다가 전체 취업자의 20%를 차지하는 자영업자의 창업 이후 생존율은 높지 않다.

2021년 기준 음식·숙박업의 창업 5년 후 생존율은 23%에 불과했다. 4곳 중 3곳은 5년 안에 문을 닫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자영업 과밀화를 정책적으로 줄여나가야 할 상황에서 정부의 비(非) 선별적 금융 지원은 외려 퇴출 대상인 ‘좀비 사업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아주는 결과가 될 소지가 크다. 고통스럽지만 부실 사업자의 퇴출을 유도하고 자영업 생태계의 구조조정에 나설 때다.

자영업 대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출자 상황에 맞는 상환 계획 등을 마련할 것은 물론 과포화 상태인 자영업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야 한다. 옥석을 가리지 않는 정책 금융 지원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부실 사업자의 퇴출을 막아 오히려 자영업 생태계를 왜곡시킬 우려가 크다. 경쟁력 없는 사업자의 폐업을 지원하고, 다른 일자리를 찾아 옮겨갈 수 있도록 범정부적 차원의 재교육 및 구직 연계 프로그램 등을 마련해야 한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정부와 기업의 노력도 필요하다.

지난 2월 27일 국책 연구 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 고영선 선임연구위원(연구부원장)이 발표한 ‘더 많은 대기업 일자리가 필요하다.’ 제하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기업 일자리 비율은 2021년 기준 13.9%로 OECD 32개 회원국 중 최하위로 OECD 전체 평균인 32.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급여, 복지 등이 상대적으로 좋은 대기업 일자리가 적다 보니 과도한 입시 경쟁이 일어나고, 저출산과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통계청이 지난 2월 27일 발표한 ‘2022년 임금 근로 일자리 소득(보수) 결과’에 따르면 임금 격차 등으로 인해 청년들은 대기업의 질 좋은 일자리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월급과 중소기업 월급은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대기업 근로자의 평균소득은 월 591만 원으로 1년 전보다 4.9%(27만 원) 증가했다. 중소기업은 286만 원으로 7.2%(19만 원) 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소득 격차는 2.07배인 305만 원이었다.

KDI 보고서의 지적대로 청년층이 선호하는 대기업 일자리를 늘리도록 기업의 규모화(Scale-up)를 저해하는 중소기업 지원 정책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일회성·일과성 연명 정책만으로는 자영업이 직면한 작금의 위기를 막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에 대한 규제는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고정관념부터 고쳐야 한다.

중소기업이 더 성장할 때 발생하는 추가 규제 부담 때문에 성장을 미루는 이른바‘피터팬 증후군(Peter Pan syndrome)’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대기업 등의 과도한 규제로 작용하는 ‘모래주머니’들을 서둘러 제거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들을 적극 지원하는 한편 혁신 기술을 가진 대기업과 스타트업(Start-up │ 신생기업)들을 집중적으로 뒷받침해줘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