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은 시작부터 이변과 파란의 연속이었다. 전 대회 우승-준우승팀인 이탈리아와 프랑스가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면서 충격을 안겼고 카메룬, 나이지리아 같은 아프리카의 강호들도 홈그라운드와 다름 없었던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어드밴티지를 누리지 못했다.



개최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월드컵 사상 처음으로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는 비운의 주인공이 됐다. 한편으로 한국, 일본으로 대표되는 아시아의 투혼과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칠레 등 4개 팀이 8강에 진출한 남미의 선전도 눈부셨다. 남아공월드컵에서 유난히 이변이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 피로 누적된 유럽 강호, 체력 부담 가중
대회 초반 가장 충격적인 이슈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16강행이 좌절된 것이었다.



잉글랜드, 스페인도 초반에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으로 혹평을 받았다. 이들이 부진했던 이유로는 체력적인 부담이 첫 손에 꼽힌다.



시즌 내내 리그 경기와 챔피언스리그 등을 소화했던 선수들이 제대로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대표팀에 합류했기 때문이다.



한국 대표팀의 주장 박지성(28,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공식 기자회견에서 "시즌이 끝나고 월드컵에 참가한 유럽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어려움을 겪은 반면 시즌 중에 참가한 아시아나 남미 선수들은 체력적으로 큰 문제가 없다"며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했다.

특히 유럽에서도 가장 격렬하기로 소문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소속 선수들의 피로 후유증이 컸다. 퍼디낸드의 부상, 루니의 침묵, 제라드-램파드의 동반 부진 등이 눈에 띄었던 잉글랜드는 물론 에브라, 아넬카, 말루다, 사냐가 주축이었던 프랑스도 일찌감치 짐을 쌌다.

▲ 마구 자블라니, 약팀에 유리했다?
대회 공인구였던 자블라니의 '마성'에 각국의 희비가 엇갈렸다. 자블라니의 반발력이 승부를 가르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기도 했다. 의도한대로 패스와 킥이 나오지 않고 불규칙한 바운드와 궤적을 유발했다.



크로스 혹은 슈팅을 시도할 때 임팩트가 어긋난다는 지적도 여러 차례 제기됐다. 대회가 치러진 9개 구장 중 5개 구장이 고지대에 위치해있다는 것도 자블라니의 '마성'을 자극했다.



한국 대표팀의 염기훈(27, 수원)은 "평지보다 고지대에서 찰 때 감이 떨어진다"면서 "살살 차면 넘어가고, 넘어갈 것 같던 공은 멀리 안나간다"고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같은 조건에서라면 상대적으로 약팀에 유리할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자블라니를 지배하는 팀이 경기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랜 기간 자블라니 적응훈련을 진행했던 한국 대표팀은 세트피스에서 많은 득점을 올렸다. 프리킥을 성공시킨 박주영(25, AS 모나코)의 경우 자블라니 통제 능력으로 외신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상대적으로 볼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난 남미 선수들이 이번 대회에서 강세를 보였다는 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루과이의 포를란(3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은 자블라니를 완벽하게 지배했다는 평가 속에 5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4강행을 이끌었다.

▲ 실시간 정보 공유…세계 흐름 통합되나
실시간으로 정부가 공유되는 시대의 흐름도 세계 축구의 장벽을 허물었다. 지구 반대편의 경기가 위성으로 생중계 되고 인터넷을 통한 각종 미디어의 발달로 상대국의 정보를 손쉽게 파악하는 시대가 됐다. 노출도가 높은 강팀들이 집중적인 견제에 시달리게 된 배경이다.

세계 축구의 간극이 좁혀지면서 대륙별 경계도 희미해지고 있다. 기술축구로 대변되는 브라질이 압박과 수비 안정을 중시하는 실리 축구를 꾀하고 힘과 조직력을 앞세운 독일 축구에 기술이 가미된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본선 단골 진출팀이 된 한국(7회 연속), 일본(4회 연속)의 경우 연속 참가로 인한 경험 누적과 자신감으로 세계의 벽을 두드리며 나란히 원정 월드컵 사상 첫 16강 진출의 쾌거를 이뤘다.

이밖에 남반구에 위치한 남아공의 기후도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추울 때면 체감온도가 영하로까지 떨어진 기온 탓에 아프리카 선수들이 홈 어드밴티지를 누리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주요 경기에서 벌어진 오심 역시 승부의 향방을 통째로 바꿔놓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FIFA는 이번 대회 판정의 정확도가 94%에 이른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지만 골라인 판독 시스템 도입 등 개선책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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