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 헌법에 못을 박은 나라도 있고 공직선거법 등으로 정한 나라도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상 200명 이상으로 한다고 한계숫자를 정해놨지만 구체적으로 몇 명이라는 명문규정이 없어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또는 자기 편리에 따라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학자(數學者)들은 ‘200명 이상’은 300명을 넘겨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그래서 18대까지는 299명으로 정원이 정해져 있었으나 세종특별자치시가 생기면서 1석을 늘리는 것으로 여야가 합의하여 ‘예외규정’으로 300명으로 정했다.

 

원칙이란 한번 바꿔지면 계속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관례’가 될 수도 있는 것이어서 각계의 우려가 제기되었으나 새로운 행정도시의 대표를 두지 않을 수 없는 일이어서 편법증원이 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헌법위반이라는 논쟁도 제기될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300명을 훌쩍 넘기자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커다란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지난번 판결을 통하여 지역구 인구편차를 3대1에서 2대1로 줄여야 된다는 현행 선거법에 대한 위헌판결이 나오자 선관위 소관인 국회의석획정위원회에서 느닷없이 364명으로 국회의원 숫자를 늘리는 제안을 했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아야 했다.

 

획정위라는 데가 헌법도 고치지 않고 제멋대로 의석을 증원하겠다고 나선 것은 299에서 300으로 늘어났을 때 국민들이 용인한 것을 위헌이 아니거나 한번 넘어갔으니 이번에도 그대로 수용될 것이라고 안이하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새정치연합은 이를 적극 지지하다가 불리해지자 비례대표 선거를 권역별로 계산하여 지역적으로 불리한 지역에서도 여야가 동반 당선할 수 있다는 묘안을 내놨다. 새누리당 텃밭인 영남에서 새정치연합도 당선하고, 새정치연합의 아성인 호남에서는 새누리당 후보도 당선한다는 윈윈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시물레이션 결과 야당에 절대 유리한 것이라는 판단이 나와 여당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 선거구 문제는 매듭을 짓지 못하고 마냥 늘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농촌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석을 줄이지 말고 비례대표를 줄이자는 타협안을 제시하고 있으며 새정치연합은 굳세게 비례대표의석을 고수하고 권역별선거를 내세우며 맞선다. 한 치의 타협도 없는 여야대결구도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진보적 시민단체에서는 3석정도 국회의석을 늘리고 영남에서 3석, 호남에서 2석정도 줄이는 방안이 채택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어 혼선이 계속된다.

 

크게 늘리면 국민의 지탄이 일어나겠지만 3석 정도는 양해가 되지 않겠느냐 하는 식으로 보는 것 같다. 특히 영남 3석은 새누리당 몫으로 치부하고 호남 2석은 새정치연합의 것으로 쳐서 의석균형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늘어나는 의석은 충청권에 배당되지 않겠느냐 하는 얘기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역구 획정에 결정적 권한을 행사할 것으로 보이는 국회정치개혁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병석이 새로운 안을 내놨다.

 

농촌지역구를 14석 늘이되 줄어든 비례대표를 권역별선거로 치러 야당에게 유리하게 선거법을 개정하자는 안이다. 이 때 국회전체 의석은 300명으로 변함이 없다. 여야가 이 제안을 받아드린다면 그대로 확정될 가능성이 많다. 왜냐하면 목숨을 걸다 시피하고 있는 농촌출신 의원들은 14석이 늘어나면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이며 야당으로서는 비례대표에서 여당보다 훨씬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회가 국민을 대표하는 기관인 것은 틀림없지만 국민의 이익은 내팽개치고 자신들만의 기득권 유지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현실을 보면 민망하기 짝이 없다. 염치를 불고하고 오직 자당 자파의 이익과 의원각자의 이익이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구도로 짜인 국회 시스템은 원칙도 법도 안중에 없는 자기들만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현재의 국회는 국정감사도 끝마치고 이제 내년도 예산안만 통과시키면 파장이다. 모두 총선에 대비하여 진력할 태세다.

 

따라서 선거법을 확정하는 일이 급선무인데 과연 어떻게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인지 국민들은 눈을 부라리며 지켜본다. 물론 여야가 합의하여 게리맨더링 선거구가 될 것이라는 경험칙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로 인해서 행여 국회의원 숫자를 놓고 헌법정신에 위배되는 선거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여야가 치열하게 정쟁을 벌이고 있는 이슈는 겉으로 봐서 역사교과서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여야가 모두 사활을 걸만큼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선거에서 이슈가 되더라도 공방(攻防)으로 그칠 것이며 어느 한쪽만이 유리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국회의석의 숫자나 비례대표의 권역별 선거는 피부에 와 닿는 끽긴한 문제다.

 

여기서 물러나면 기본이 흔들린다. 그렇다고 국민의 눈치를 외면했다가는 뛰어보지도 못하고 주저앉을 수 있다. 고무줄이 아닌 의석수를 눈앞의 이익으로만 결정한다면 이기고도 지는 꼴이 될 것임을 강력하게 경고하는 이유다. 어느 쪽의 이익이냐를 떠나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농촌의 대표성을 살리는 것이 허공에 뜬 비례대표보다는 훨씬 국민의 정서에 부합한다. 공천헌금으로 얼룩진 비례대표는 차라리 없애는 게 어떨까. 많은 국민이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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