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혁승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경실련 정책위원장)
세계적 경제 불황이 바닥이냐 아니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주식시장은 두 달 연속 상승세를 타고 있고, 부동산시장도 일부 지역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저금리 정책으로 인해 과도하게 풀린 부동자금이 8백조원 규모에 달하고 있고, 부동산 투기 억제책들의 전면적 해제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부 정책이 맞물려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실물경제는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세계적 경기 동반 침체에 따른 해외 수요 부족으로 인해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기업들의 설비 투자와 가동률은 떨어지고 있고, 부실 기업에 대한 선별 작업이 늦어짐으로써 여전히 실물경제로의 자금 흐름은 정상을 회복하지 못한 채 부동자금화하고 있다.

과다한 차입 경영으로 기업 규모의 확장을 추구해온 많은 기업들은 재무 건전성 악화로 경영난을 겪을 위기에 처해 있고, 부실 기업의 본격적인 구조조정이 시작되면 그로 인한 대량 실업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 사회적으로 대규모 실업자 증가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지만, 업계에서는 인력 구조조정이 기업의 생존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필수 조건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취약한 사회적 안전망을 최우선적으로 걱정해야 할 대통령도 노동의 유연성 확보가 연말까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국정 과제임을 공언하고 있고, 정부도 공기업 민영화와 인력 구조조정이 마치 공기업 개혁의 요체인 것처럼 얘기한다.

고용률의 급격한 하락을 막기 위해 청년 인턴 확대와 비정규직 고용 기간의 연장을 추진하면서도 양질의 일자리는 줄이겠다는 이율배반적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셈이다. 사람을 비용(cost)으로 보는 업계와 정부의 근시안적 시각이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단기적 비용 절감 차원에서 인력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기업들은 중·장기적 경쟁력의 원천을 잃어버리게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지식기반 경제 시대에는 사람이 경쟁력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국가적으로도 자원 부족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국가 경쟁력의 원천이다. 사람을 비용으로 취급하는 기업과 국가에서는 사람이 경쟁력의 원천으로서 제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다.


세계적 경제 불황에 직면해 우리 기업들은 1997년 외환위기 이래 또다시 인력 구조조정을 통해 당장의 위기를 돌파할 것인지, 아니면 인력 운영의 패러다임을 바꿈으로써 인적 자산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 우위 확보의 전기로 삼을 것인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다.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해 사람을 자르는 것 외에 달리 방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영자들에게는 여유 인력을 껴안고 간다는 것이 한가롭게 들릴지 모른다. 그리고 정리해고가 단기적으로 비용을 줄여주고 노동생산성 지수를 어느 정도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이다.
새로운 기회 오면 우수 인력 어디에서 찾나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보면 남아 있는 인력에게 업무 과부하가 걸리고 그 결과 노동생산성이 떨어지는 악순환의 결과를 낳게 된다. 경영진에 대한 신뢰 상실로 인해 조직에 대한 구성원들의 헌신도가 추락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위기국면이 지나가고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도 근시안적 대응으로 위기를 넘긴 기업들은 우수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회를 놓치게 된다.
직원들을 지식 근로자로 전환시키고 그들이 자신들의 역량과 열정을 쏟아부어 일할 수 있도록 하려면 경영진이 직원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고 직원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말로써 입증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과 같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경영진이 어떠한 선택을 하는지에 의해 입증된다. 경영진이 직원들을 소중한 자산(asset)으로 인정할 때 직원들도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송두리째 쓸려가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함께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 극복 방안을 모색한다면 인력을 줄이지 않고도 직원들의 자발적 협조를 바탕으로 얼마든지 인건비 절감 방안을 찾을 수 있으며, 상생의 규범이 뿌리내리게 할 전기를 맞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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