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가득 채우고…시베리아 횡단여행이 시작됐다

 

◈ <중앙뉴스> 로재성 논설위원의 시베리아 횡단기 제 2 부  

 

 

▲ 붉은 광장 입구     © 로재성 논설위원

 


◈ 겨울 시베리아를 횡단하다. [제2부]

◈ 설레임 가득 채우고…시베리아 횡단여행이 시작됐다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떠나는 1월 7일까지 나흘간 모스크바에 머물러야 했다. 박 선생은 친구와 만날 일정으로 그렇게 잡았지만 내게 모스크바의 체류일정은 너무 길었다. 모스크바 곳곳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고 싶었다. 지하철역을 찾아갔으나 어떤 역무원도 영어 한 마디 몰랐고 지하철 어디에도 영어 한 글자 없었다.

 

세계적인 도시이자 공산권의 심장부의 관광인프라는 제로였다. 무엇을 보고 찾아가란 말인가. 그렇다고 택시를 타고 이것저것 보러 다니다가 현금 55만원을 써버리면 시베리아 벌판에서 굶어죽을 것이다. 나는 돈쓰기가 무서워서 모스크바 관광을 기피해야 했다.
 
50년은 더 됐을 것 같은 낡은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지하입구에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야 했는데, 난방열을 외부로 배출시키지 않기 위해서였다. 신기한 것은 난방으로 훈훈한 지하철의 지하실내로 비둘기들이 들어와 산다는 것이다.

 

노숙자들도 많이 들어와 거주하고 있었는데, 중년의 여자노숙인이 비둘기떼에 먹이를 주며 행복해 했다.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지만 이 추운 나라에서 새와 노숙인을 지하로 불어들여 살게 하는 것이 러시아였다.

 

첫날은 지하철 구경과 숙소 주변의 거리를 한참 걸으며 모스크바를 느꼈다. 모스크바 뒷골목은 인적이 드물고 수십 년 전 공산국가 시절에 지은 건물들은 투박하고 낡고 볼품이 없어 내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스탈린 시대의 거리를 지나는 듯 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숙소에는 나같은 여행객은 보이지 않고 노동자들로 보이는 러시아청년들만 가득했다. 큰방이 세 개쯤 되고 그 중 하나가 여자들 방인데, 중년 여인들이 많았다. 부엌이 하나 있는데, 조리가 가능했고 밥을 먹을 수 있는 길다란 탁자가 있었다. 샤워실과 세탁기도 있었다.  침대 하나가 6천원에서 1만원 정도인데, 값에 비해 편리했다. 한인이 운영하는 숙소는 하루 숙박료가 1백 달러였는데, 그것의 1/10이었지만 난방은 최고였고 침대도 깨끗했다. 낯선자들과 얼굴을 맞댄다는 것에 익숙해지니 괜찮았다. 한 러시아 청년과 1층 침대의 소유를 둘러싸고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주인여자가 나타나 해결해줬다. 주인여자의 영어도 형편없었다.

 

다음날 아침 버스로 모스크바 시내를 구경하는 버스투어에 나섰다. 나는 콜택시를 타고 붉은 광장 입구로 가서 붉은 색의 2층 투어버스를 탔다. 모스크바 중심부를 도는 노선이었고 차창을 통해 시내를 구경했다. 중간에 다른 노선 버스로 갈아탈 수 있었다. 같은 곳을 두 번이나 돌았으나 세 시간쯤 걸렸다. 시내에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많아 볼만 했다. 버스에서 내려 붉은 광장으로 갔다. 눈이 조금씩 내리는 추운 광장으로 엄청난 인파가 몰려와 있었다. 1월 7일이 동방정교회 크리스마스라 거리는 축제분위기였다.

 

붉은 광장 입구에서 공항검색대 같은 것이 설치되었다. 테러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나는 배낭속까지 보여줘야 했다. 붉은 광장은 생각보다 비좁았다. 크렘린의 붉은 성벽은 견고하고 높았다. 붉은 벽돌로 오래 전에 지어진 듯한데, 벽돌틈을 이은 접착제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돌처럼 견고했다. 양파모양의 돔들을 여러 개 가진 대성당들, 화려한 궁전, 이반 종루라고 불리는 높은 탑이 인상적이다. 광장 한켠에 그 유명한 성 바실리 성당이 있었는데, 동화 속에서 나온 듯이 멋진 모습이었다.  광장을 한참 거닐다가 너무 추워 포장마차에서 꼬치와 커피를 사먹었다. 오후 네 시가 넘으면 어두워지는데, 벤츠 택시를 타는 바람에 정상 요금의 10배인 7만원을 날렸다.

 

이튿날 우주박물관이나 푸쉬킨 미술관을 가고 싶었으나 비용초과로 참기로 하고, 이튿날 시베리아 기차를 탈 준비를 했다. 배낭을 메고 큰 슈퍼마켓을 찾아가 물건을 샀다. <슈페르 마르켙>이라는 러시아어를 배워 물어물어 찾아갔다. 시내에서 제법 크다는 슈퍼마켓이 서울 주택가의 작은 슈퍼만했다. 기차 안에서 먹을 빵, 치즈, 소시지, 물, 술, 과일, 통조림을 구입하고 숙소여주인에게서 낡은 과도 하나를 샀다. 인천공항에서 고추장과 소주를 빼앗긴게 억울했다.

 

마침 유가하락으로 루불화 가치가 폭락해 다행이었다. 베게만한 식빵 하나가 1천 원 미만이었고 맛있는 소시지도 큰 것이 3천원 정도였다. 흑맥주는 정말 맛있었는데, 한 병에 800원 정도였다. 나는 해외에서 늘 식품 사는 걸 즐겼는데, 모스크바 슈퍼마켓에서 열흘간 먹을 한 배낭의 식량을 샀는데, 7만원을 소비했다. 이제 주머니에 30만원이 남았으나 최소한 굶어죽을 일은 없다는 것에 마음이 편해졌다.

 

이튿날 아침 늦게 예약된 택시를 타고 시베리아 열차가 떠나는 야로슬라브스키역으로 달려갔다. 역사 지붕이 나폴레옹이 쓰던 모자와 닮아 특이했다. 1만 km의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출발역치고 규모가 초라했다. 나는 4인실에 탈 동행인들이 누굴까 하는 호기심에 들떠 있었다. 승차 한 시간 전에 빵과 소시지를 꺼내 먹었다. 그때 한 청년이 배낭을 메고 지나갔는데, 배낭에 태극마크를 달고 있었다. 한국인 대학생이라고 했다. 혼자서 인도를 여행하고 핀란드에서 한 달간 있다가 시베리아 기차를 탄단다. 나는 여행동반자를 만나 너무 기뻤다.

 

오후 1시 20분이 되자 시베리아행 개찰구가 열렸다. 서울역 시스템을 상상하면 안 된다. 역사 건물을 빠져나오면 야외에 플랫폼이 몇 개 펼쳐졌는데, 사람을 통제 하는 철책 하나도 없었다. 시골역과 하나 다를 바 없었다. 3번 플랫폼으로 승객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열차 번호는 070. 객차번호 13번.

 

플랫폼 거의 끝에 가니 13번 열차가 나타났고 덩치 큰 중년여인이 제복을 입고 승강구 앞에 서서 기차표를 검사했다. 나는 여권을 제시했다. 여자는 자기 칸에 탈 승객명단을 손에 쥐고 한 명 한 명 체크했다. 키가 175cm쯤 되는 여승무원은 뚱뚱했으나 얼굴은 영화배우처럼 예뻤다. '닥터 지바고'에 나오는 여주인공 '라라'처럼 생겼고 파란 눈과 금발이 매력적이었다. 나는 나흘간 그녀를 만날 때마다 라라라고 불렀다. 그 후 알게 되었지만 라라는 목소리가 크고 엄격한 여인이었다. 자기가 맡은 13호칸을 자기 안방처럼 자주 청소하고 말썽 안 생기게 엄격하게 관리했다.

 

나는 좌석번호 21번을 찾았다. 4인실 북쪽 창가였고 기차가 나아가는 순방향으로 자리를 잡았다. 한국인 대학생은 6인실이라 10번 기차에 탔다. 옛날 무궁화호 기차처럼 생겼다. 4인실 칸은 70∼80센티 가량의 칸막이 복도가 길게 나 있었고 한 칸 방보다 작은 4인실이 칸막이로 나뉘어 있었다. 창가쪽에 작은 탁자가 붙어 있었고 아래 칸 두 개의 긴 좌석은 창가승객의 침대였다. 낮에 2층 침대좌석권을 가진 사람은 잠시 아래 칸 의자에 앉을 수는 있으나 창가좌석권을 가진 사람이 눕기를 원하면 자리를 피해줘야 했다.

 

우리 칸으로 러시아청년 둘이 들어왔는데, 영어를 한 마디도 몰랐다. 하룻밤만 자면 내린다고 했다. 둘은 2층 침대자리였다. 창가 자리인 나만 작은 탁자가 주워졌다. 맞은 편 자리는 승객이 없었는데, 오후 1시 50분 기차는 천천히 야로슬라브스키역을 떠나갔다. 드디어 시베리아 횡단여행이 시작됐다. 가슴이 설레었다. 15량을 단 기차는 시속 70킬로 정도로 동쪽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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