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김종호 기자] 종이책이 사라질 것이라는 예언은 초기 전자책인 메멕스가 등장한 1945년 이래로 계속되어 왔다. 하지만 종이책은 여전히 건재하다. 책을 사는 것과 읽는 것은 별개일지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아직 많은 사람들이 책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는 책을 느낀다. 물리적인 면이 주는 매력은 책을 포기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책을 다 읽으면 ‘소유’ 할 것인지 ‘공유’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때문에 시대가 변했더라도 중고서점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중고책 거래 플랫폼 ‘책거리’를 개발한 E2ST 명경석 대표를 만나봤다. 그가 제안하는 중고책 개인 간 거래(P2P) 플랫폼이 어떻게 책의 건재함을 지속시키는지 살펴보자.

 

▲ 중고책 거래 플랫폼 책거리  E2ST  명경석 대표     © 김종호 기자

 

▲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으며... 현장에서 답을 얻다

 

“전화로는 문전박대를 받았지만 오히려 직접 중고서점을 방문했을 때 사장님들과 소통이 잘된 경우가 많았다. 우리가 생각한 솔루션에 관해 많은 피드백을 받았고, 책상에 앉아 생각하는 것과 현장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장 속에 답이 있다는 말을 체감했다. 하루에 8~13km를 걸으며 몸으로 느낀 깨달음이다. 현장을 떠난 플랫폼은 말이 안된다. 끊임없이 찾아가 소통해야 한다”

 

중고책 거래 플랫폼 ‘책거리’는 O2O 서비스다. O2O(online to offline)는 말 그대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결합, 융합을 기반으로 하는 서비스다. 때문에 아날로그 현장과의 소통은 필수다. E2ST 명경석 대표는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었다”며 ‘책거리’는 함께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고 회고했다.

 

“중고서점을 방문할 때 현장의 목소리나 요구사항을 파악한 다음, 바로 엔지니어와 연락해서 반영한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서점 사장님들이 더욱 더 믿음을 준 것 같다”

 

그는 서점 사장님들과의 피드백이 담긴 메모를 보여줬다. 그 안에는 그 동안의 소통이 쌓인 각가지 아이디어가 빼곡했다. 명 대표에게는 살아있는 지침서인 것.

 

‘책장거래’도 그러한 아이디어중 하나다. 사용자들이 책 옆면의 글씨가 보이는 책장사진 하나만 찍으면 판매할 수 있는 ‘책장거래’서비스는 기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서적구매, 판매 시스템이다.

 

▲ 끊임없이 소통·협상·설득의 과정을 반복했다

 

이투에스티(E2ST)는 스마트폰 메인보드부터 UI까지 만들던 기술을 가진 멤버들과 함께 설립한 스타트업이다. 주방장이 직접 요리하는 것과 만들어진 봉지를 뜯어 그릇에 담는 것이 다르듯, 직접 방문한 현장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수요가 발생했고 공급에 대한 니즈가 벌어졌다. 명경석 대표는 현장의 목소리를 그 즉시 바로 ‘책거리’에 반영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책상에 앉아 고민한다고 들리는 것이 아니다. 그는 현장에서 끊임없이 소통·협상·설득의 과정을 반복했다. 업체에 하청을 맡겨 만드는 앱이 아닌 자신들이 직접 만들어나가는 플랫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책거리 앱 출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일반 가정에는 평균 100~300권정도의 책들이 쌓여있다. 쌓여있던 책들 중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지만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서적들이 있다. 책거리는 일반사용자들이 이사갈 때 자칫 버리기 쉬운 책들을 판매하기 쉽도록 만들었다. 편안하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창구가 될수 있다.”

 

그동안은 집에 쌓여있던 책들을 처분하려 해도 번거러움 때문에 kg당 얼마의 값을 받고 팔거나 그냥 내다 버리기 쉬웠다. 또한 ISBN(국제표준도서번호)코드가 없는 90년대 이전의 책들은 거래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이 원하면서도 가치있는, 희귀한 장서들이 묻혀있다는 것을 발견한 명경석 대표는 책거리 플랫폼을 통해 이 책들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과 판매하고 싶은 판매자들을 매칭한다. 원하는 서적이 매칭되면 팝업창을 통해서 바로 결제가 가능하며, 택배와 안전결제시스템도 구축했다.

 

그리고 중고서점을 위한 공급자용 앱(App)과 판매자센터 웹(Web)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중고서점 스스로 만들기 어려웠던 공급 및 판매의 대안을 ‘책거리’를 통해 제시한 것이다.

 

지금도 중고서점에서는 몇십만권의 장서를 일일이 PC로 가져와서 바코드를 찍고 다시 가져다 놔야하는 작업을 반복한다. 하지만 책거리앱을 이용하면 스마트폰을 가져가서 사진을 찍어 바로 등록할 수 있다. 언뜻보면 간단하게 보이지만 작업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 수 있어 서점 사장님들이 선호한다고 그는 전했다.

 

때문에 중고서점에 묶혀있던 희귀한 장서를 밖으로 드러낼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효율성도 현장의 니즈를 즉각적으로 반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책거리 판매자 센터 UX는 60세 이후의 서점 사장님들의 입장을 반영해서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MVP(최소기능제품)를 만들어서 발표하고, 오프라인 서점 사장님들을 만나서 관계를 만들고 협력하기 까지 쉬운일이 아니었다. 결제방식을 선택하고 APP에 적용하는 것, 배송시스템을 붙이는 것도 마찬가지. 앱을 출시하기 까지 6개월 정도가 걸렸고, 출시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걸 알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수수료 부담없이 책을 사고 팔수 있는 선순환 구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언뜻, 중고책 거래 확대와 신규출판시장과의 역학관계가 궁금해졌다. 이에 관해 명경석 대표는 “중고시장이 확실하면 신제품시장이 확대된다. 자동차, 카메라 같은 대표적인 중고시장을 살펴보자. 중고시장이 없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이거 평생 써야하나’라고 고민하면서 신제품 구입에 신중해진다. 하지만 중고시장이 확실하면, 소비자들은 다시 팔 수 있는 창구가 있기 때문에 신상품을 지속적으로 구입한다. 중고시장의 확대가 신규시장의 성장을 촉진시키는 셈이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중고시장이 없다면 아마 스마트폰 신규출시도 감소할 것이다”라고 답했다.

 

중고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제품교환주기를 단축시키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모든 ‘물건’은 사는 순간부터 가치가 떨어지지만 책은 낙서나 파손만 없다면 가치가 절하되지 않는다. 물론 중고책이 최근 트렌드나 최신기술을 반영하긴 어렵다.

이와 관련해 그는 "중고책의 값어치는 지금껏 묻혀있던 가치를 재발견하는데 있다. 어떤 특정한 형태가 따로 있는 것이다. 새 책을 샀을 때 그것을 다시 부가가치로 환원시킬 수 있는 플랫폼이 있다면 새책시장과 중고책시장은 상호 보완된다. 경쟁상대가 아닌것이다”라며 이어 “일반시민과 중고서점이 수수료 부담없이 책을 사고팔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쌓는 것. 이것이 책거리가 바라보는 잠재시장이다”

 

▲ 생각을 달리하면 새로운 '부가가치'를 찾게된다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명 대표는 “중고책 거래 플랫폼 ‘책거리’는 기능이나 편리성보다는 새로운 시장, 가능성을 만들어 나가는데 그 의미가 크다. 쌓여있는 서적들 중에서 본인이 인지하지 못한, 비싼가격으로 거래되는 책들이 있다. 또한 꾸준한 현장과의 소통을 통해서 전용서점측에도 새로운 서적 공급 및 판매 활로를 열어드리려고 노력한다”고 밝혔다.

 

우리의 집안을 둘러보자. ‘소유’하고 싶은 책들도 있지만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책들도 있다.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생각을 달리하니, 나도 몰랐던 부가가치가 집에 쌓여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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