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과연봉제, 노사 합의 없이 강행돼 진통 예상

[중앙뉴스=김종호 기자] '신의 직장'으로 불리는 모든 금융공공기관에서 내년부터 성과연봉제가 시행된다. 하지만 9개 금융공공기관 중 노조위원장이 사측과 합의한 예금보험공사를 제외하고 8개 기관이 노사 합의 없이 강행되면서 금융공공기관의 성과연봉제 정착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성과연봉제 도입에 대한 개별 동의서를 받고, 노조와 협의 없이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성과연봉제 도입을 밀어붙이면서 향후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 등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 진상조사단이 30일 서울 중구 IBK기업은행 본점에서 현장조사에 앞서 노동조합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날 진상조사단은 금융권 성과연봉제 도입과 관련, 성과연봉제 동의서 작성과정의 강압 여부 등 불법행위가 있는지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이런 논란속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더민주당)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정한 기업은행에 대해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산업은행에 이어 진행되는 이번 조사에서는 성과연봉제 도입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행위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계획이다.

한정애 의원을 단장으로 한 11명의 더민주 의원은 30일 서울 중구 기업은행 본점에서 노동조합과 권선주 기업은행장 등 노사 양측의 의견을 들었다. 이번 진상조사는 사측이 지난 23일 성과연봉제 도입에 강압과 협박이 있었다는 노조의 주장이 있었기 때문.
 

노조 관계자는 "임원들이 지난 23일 본부장과 지점장들을 압박해 직원들에게 성과연봉제 동의서 서명을 받도록 강요하는 등 일선 직원들이 인권침해를 받았다"며 "일부 부장과 팀장은 동의서를 작성하지 않은 직원은에게 11번이나 회의실로 따로 불러내 사인을 강요하고 인사나 평가 불이익을 언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면 권 행장은 성과연봉제 도입 동의서가 지점장 등의 회유와 강압에 의해 이뤄지고 동의서 작성과정에서 불합리한 조치들이 많았다는 노조 측 의견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은 "동의서 작성 시 불법 사례를 조사한 적이 없고 보고받지 못했다"며 "동의서 작성은 직원의 자유인 만큼 신중하게 동의서를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권 은행장은 의원들 앞에서도 성과연봉제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권 은행장은 이날 진상조사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을 만나 “금융권이 마주한 저수익 국면의 패러다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성과연봉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더민주 진상조사단…‘사측 강압’ 강력 비판 

 

이날 진상조사단으로 나선 한정애 더민주 의원 등 6명은 기업은행이 노조와의 동의 없이 도입한 성과연봉제가 강압적이며 행장의 소신이라기보다 정부 방침에 따른 것이어서 폐단이 크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이사회가 지점에서 일어난 일을 제대로 확인해보지도 않고 의결한 절차상의 문제가 있다"며 "특히 동의서 작성 과정에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례들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처럼 공공기관이 성과연봉제를 확대하는 가운데 불법적 강압 행위가 있었는지 사례를 모아 내달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지적할 계획"이라며 "당과 의논해 향후 대응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에대해 권 행장은 “은행은 앞으로 비대면으로 갈 수밖에 없고 역량 있는 직원들의 컨설팅 업무가 은행원의 업무가 될 것”이라며 “그동안 능력 있는 직원들에 대한 보상기회가 없었던 만큼 이들에게 적절한 보상도 필요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고 말했다.

 

해고가 쉬워질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단호히 대답했다. 권 행장은 “직원들이 우려하는 것은 쉬운 해고로 연결되는 것인데 기획재정부에서도 쉬운 해고는 관련 없다고 문서까지 남겼다”며 “직원들의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직원 편에 서서 도입했다”고 했다.

 

권 행장의 일관적인 답변에 은행원 출신 이용득 의원은 “고객 앞에서 11번이나 불려간 직원도 있는데 자율적으로 (동의서 작성이) 이뤄진 것이겠느냐”며 “권 행장은 이런 것도 모르느냐”고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기업은행 노조는 절차상 불법적인 부분은 법적 대응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노조 관계자는 "성과연봉제 동의서 작성과정에서 확인된 회유와 협박 사례 등이 있다"며 "다른 공공기관들과 연대해 법적 대응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 성과연봉제 도입, 노사 합의 없이 강행돼 진통 예상 

 

31일 업계에 따르면 금융당국이 데드라인으로 제시한 이달 말을 하루 앞둔 지난 30일 금융공공기관 중 마지막으로 수출입은행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금융위원회 산하 산업은행,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한국자산관리공사, 주택금융공사, 예금보험공사, 예탁결제원 등 9개 금융공공기관이 모두 성과연봉제 도입을 마무리했다.

 

그동안 금융당국은 성과연봉제 도입이 지연되는 기관에는 인건비, 경상비를 동결하거나 삼각하는 등 보수·예산·정원 등에서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강구하겠다며 금융공공기관들을 압박해 왔다.

 

이는 금융공공기관이 무사안일주의에서 벗어나 성과중심의 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담고 있다. 321개 공공기관 중 예탁결제원의 직원 연봉 순위가 1억400만원으로 가장 많을 정도로 금융공공기관은 '고임금 구조'라는 지적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노조 관계자는 "성과연봉제에 대한 찬반투표에서도 평균 90% 이상의 반대표가 나왔지만 금융당국의 데드라인 압박에 못이겨 충분한 협의 없이 도입이 강행됐다"면서 "앞으로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대응은 물론 총파업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공공기관들은 성과연봉제 도입을 강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 직원들을 설득해 성공적으로 성과연봉제가 정착하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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