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TV뉴스에는 충격적인 장면이 방영되었다. 의사를 포함한 전문직 인사들이 한 밤중 수락 자동차도로에서 몇억원을 호가하는 외제 고급승용차의 속도제한장치를 풀어버리고 324km로 광란의 경쟁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한국의 고속도로는 기껏해야 110km를 넘는 곳이 없고 미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아우토반에서는 무제한이라고 하지만 속도장치를 손보지 않는 한 200km 안팎일 것이다.

 

300km를 넘겨 질주하다가 엔진에 불길이 치솟고, 충돌사고를 일으켜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지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아까운 돈을 그렇게도 쓸 곳이 없어 미친 달리기에 매달린단 말인가. 이런 불법적인 속도 높이기는 한마디로 범죄행위이며 명을 재촉하는 일이기에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처럼 사회기강을 어지럽히고 질서를 문란하게 하는 사람들은 응분의 처벌을 받아 마땅하지만, 반대로 빨리 처리해야 할 일을 머뭇거리거나 미루기만 하는 것도 결코 환영받지 못한다. 20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첫 번째 화두로 떠오른 사안은 헌법개정문제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개막연설을 통하여 공론화시켰고 기다렸다는 듯이 각계각층에서 봇물 터지듯 개헌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높아만 간다.

 

제헌절 기념식장에서도 정세균의장은 아예 시한을 정하여 “2년 후 제헌절은 새로운 헌법을 공포하는 날이 되기를 바란다.”는 연설을 했다. 그의 주장은 한국의 정치현실을 정확히 꿰뚫어본 것으로 개헌은 머뭇거리면서 앞뒤를 재는 잔재주로는 이뤄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직시했기 때문에 나온 신념이라고 생각된다.

 

우리나라에서 광복 후 헌법제정을 논의할 때 그 첫 번째 전범(典範)은 임시정부 헌법이었으며 위로 올라가 조선시대의 경국대전(經國大典)까지 광범위한 섭렵을 아끼지 않았다. 유진오의 초안은 내각책임제였으나 이승만의 주장으로 대통령제가 된 것은 모두 아는 일이다.

 

제정도 되기 전에 한 차례 개정의 아픔을 견디고 태어난 ‘대한민국 헌법’은 이승만 정권하에서 세 차례, 박정희 정권에서 세 차례, 최규하와 전두환의 합작으로 한 차례 그리고 4.19혁명과 6월 항쟁 때 각기 한 차례씩 모두 아홉 차례의 개정절차가 진행되었다. 우리는 지금 개헌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과거의 쓰라렸던 개헌을 기억해야만 한다.

 

과거의 개헌 중에서 독재자들의 자의로 행해진 개헌은 모두 국민의 뜻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오직 권력자만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자신들의 영구집권만을 구상한 개헌으로 국민의 혁명으로 쫓겨나거나 측근의 손에 생명을 잃었다.

 

이들 사례를 잘 알고 있는 전두환은 아예 임기를 7년 단임제로 정하고 평화적으로 물러났다고 하지만 국가원로회의 의장직을 직전 대통령이 하도록 헌법에 명시한 것이 6월 항쟁 후에도 그대로 남아 있어 이번 개헌 때 반드시 손봐야 할 대목이다.

 

4.19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의 열화 같은 지지를 받으며 탄생한 헌법 역시 지도자의 무능으로 쿠데타를 자초했다. 직선제 개헌을 열망한 국민의 뜻으로 개정된 현행헌법은 집권욕에 눈이 먼 야당지도자들 때문에 군사정권을 연장시켜주는 엉뚱한 효과를 안겨줬으며 지금까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닉네임 속에 개헌의 당위성은 높아만 간다.

 

지난 7월12일 국회세미나실에서는 국가전략포럼이 주최하는 “국민이 바라는 개헌,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주제발표자는 우윤근 국회 사무총장이 맡았고 새누리당 김세연의원, 더불어민주당 원혜영의원, 김덕룡 전 의원, 범시민사회단체연합 전대열고문이 각기 토론에 참여했다.

 

개헌에 대해서는 본격적으로 토양이 조성되고 여론이 뒷받침하고 있어 희망이 넘쳐나는 듯하다. 우윤근총장은 평소의 소신을 가감 없이 발표하면서도 청와대와 각당 지도부의 결심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김세연 원혜영 김덕룡의원 등은 개헌의 당위성을 거론하며 대체적으로 분권형 대통령제를 선호하는 듯 보였다.

 

한마디로 제왕적대통령은 이번으로 끝내야 되겠다는 절실함이 서려 있다. 필자는 다른 토론자들의 발언내용은 모두 어떤 헌법으로 고치느냐는데 집중되어 있음을 일깨우면서 개헌의 시기문제가 중요함을 강조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특히 일부 개헌주장에 내년도 대선에서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남은 임기 중에 이를 실천하게 하자는 제안은 개헌을 하지말자는 것과 똑같은 말이라고 지적했다.

 

개헌을 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2가 찬성하면 되는데 헌법의 권력구조를 논의하다보면 한 가지 안으로 합의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따라서 시민단체가 앞장서 내년 ‘대선전까지’로 시한을 못 박고 이에 맞춰 국회에서 의결한 다음 국민투표에 부쳐지지 않으면 개헌은 연목구어(緣木求魚)가 될 것임을 지적한 것이다.

 

현재의 정당성향은 모두 개헌에 찬성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구나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의 당내 영향력은 막강하기 때문에 그들의 입맛에 맞는 권력구조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 현실적으로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산적해 있다.

 

따라서 국민의 86%가 찬성하는 개헌을 이루는 첫 걸음은 정세균의 연설처럼 2년 후 제헌절에서 새 헌법이 공포될 수 있도록 개헌속도를 높여야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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