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번 홀에서 울렸던 애국가"..리우올림픽 최고의 명장면 되다

116년만에 부활한 올림픽 골프에서 한국 여자골프를 대표하는 박인비 선수가 우리나라에 마지막 금메달을 안겨주면서 17일간 전세계를 뜨겁게 달궜던 지구인들의 축제이자 2016년 리우 올림픽 성화가 꺼졌다.

 

올림픽이 열리기전에 박인비는 손가락 부상으로 대회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다. 우여곡절 끝에 올림픽에 참가한 박인비는 손가락 부상에도 불구하고 각 나라를 대표해서 참가한 선수들 보다 한단계 높은 정교한 퍼팅을 선보이며 세계 최초 '골든 커리어 그랜드슬램'(올림픽 금메달과 메이저 대회 석권)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이 기록은 당분간 깨지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박인비는 2008년 LPGA 데뷔 첫해, 메이저 대회인 US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세계 최강들만이 모여있는 LPGA 무대에 혜성같이 등장한 이후 세계에서 내노라하는 골프대회를 평정했다. 이렇게 최정상급의 기량을 인정받은 박인비였지만 든든한 ‘키다리 아저씨’는 없었다.  

 

당시 박인비의 실력에 관심을 두었던 한 기업이 있었다. 박인비가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깜짝 우승을 차지하자 국내 굴지의 통신사는 2년간 박인비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박인비에게 스폰서는 재계약 불가 방침을 통보했다.

 

스폰서없이 홀로서기를 했던 박인비 선수는 2012년부터 LPGA 투어 데뷔 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에비앙 마스터스 등에서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이름을 날리는 등 박 선수는 그 해 상금왕까지 거머쥐며 세계를 호령했다.

 

박인비는 긴 슬럼프로 팬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한을 한꺼번에 털어내며 존재감을 여과없이 보여줬지만 박 선수에게 관심을 보이거나 후원을 하겠다는 스폰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참으로 아이러니 하게도 기업들은 실력에 앞서 스타성을 가진 선수를 선호한다.

 

한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는 박인비의 경우 실력은 출중하지만 실력 외에는 내세울 것이 없어 너무나 평범하다”고 설명했다. 평범하다는 이말은 ‘외모 지상주의’로 변질된 기업들의 스폰서 문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예로 박인비의 우수한 성적에도 한 스포츠마케팅팀은 박인비가 아닌 외모가 뛰어난 골프 선수를 눈여겨보고 곧바로 그 선수와 '후원 계약을 맺었다. 당시 해당 그룹은 이렇다 할 성적이 없었던 선수와 연간 4억 원의 파격적인 계약을 맺었다.  

 

결국 박인비를 후원하려는 메인 스폰서는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용품을 제공해준 일본 골프 업체 스릭슨(SRIXSON)의 로고가 새겨진 모자를 대회때마다 즐겨썼다.

 

일반적으로 메인 스폰서가 없을 경우 로고가 없는 모자를 쓰고 경기에 출전하다. 하지만 박인비는 자신을 인정해준 것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이 모자를 썼다.

 

일본 기업들은 박인비 선수의 실력을 인정하고 후원계약을 체결하려 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박 선수의 외모가 기업 이미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약 체결을 주저했다. 국내기업들이 선수의 실력보다 기업이미지를 더 우선시 한 것이다.

 

다행스럽게 박 선수의 실력을 인정한 KB 금융은 2014년 박 선수와 메인 스폰서십을 맺었다. 박 선수의 명성과 가치에 비해서는 너무나 뒤늦은 계약 체결이었으나 귀한 보석을 알아본 국내 기업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스포츠 선수의 실력보다 '이미지'만을 우선시하는 우리 기업들의 잘못된 결과라고 밖에 말할수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이 추구하는 외모 지상주의는 이제 바뀌어야 하며 결코 바람직한 기업의 태도가 아니다.

 

진흙탕속의 진주를 발견하지 못하는 기업들의 안목에도 문제가 있지만 선수들 역시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박인비 선수는 국내 기업과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도 흔들림 없었고 세계 최정상의 꼭지점에 우뚝섰다. 이제는 그 누구도 박인비의 명성에 흠집을 내서는 안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이기 이전에 한 가정을 이루고 지아비를 섬기는 여자의 몸으로 부상이라는 악재에 힘든 시간을 이겨냈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박인비 선수의 강한 모습에 박수를 보내자.

 

최악의 슬럼프와 손가락 부상 딛고 금메달 딴 박인비를 두고 우리는 그녀를 영웅이라 부른다.

 

박인비는 대한민국의 영웅이다. 영웅은 실력이 떨어진다 해도 영원히 영웅이다. 박 선수가 정망 자랑스러운 리우 올림픽이다.

 

박인비는 18번 홀을 끝내고 두 손을 들어 기쁨을 표현했다. 평소 박인비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그녀다.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두손을 높이 들어올린 우리의 영웅은 "고생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라며 "한국을 대표한다는 부담감을 견뎌 자랑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동안 나, 박인비를 위해 한 경기는 많았지만, 이번엔 조국을 위해 경기했다"라고 말하는 박인비의 말끝에 눈물이 고였다.

 

18번 홀에서 울렸던 애국가는 박인비가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노래보다 정말 최고였고 이번 리우올림픽의 최고의 명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116년을 잠자던 올림픽 골프 메달은 주인공인 인비를 위해 이렇게 오랜시간 기다렸나보다.

 

/중앙뉴스/윤장섭 기자 news@e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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