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로의 비행기에서 또 다른 여행을 꿈꾸었다

 

◈ <중앙뉴스> 로재성 논설위원의 시베리아 횡단기 제 10부

 

 ▲ 블라디보스토크 항    ©  로재성 논설위원  

 

 

◈ 겨울 시베리아를 횡단하다. [제 10 부]

◈귀로의 비행기에서 또 다른 여행을 꿈꾸었다

                           

 

     제10부

 


지구의 1/4을 도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착역인 블라디보스토크 역은 서울 교외에 있는 지하철 1호선의 전철역과 매우 흡사해서 날 놀라게 했다. 표를 받는 개찰구마저 없었고 플랫폼의 한 구석에 서 있는 낡은 증기기관차는 시베리아 철도 개통당시 운행되었던 열차라고 했다.

거대한 바다에서 8박 9일간 줄곧 떠내려가다가 땅을 딛자 약간의 현기증이 일어났고 다리는 의족처럼 낯설었다. 나는 무거운 트렁크를 질질 끌고 노란 가로등이 비추는 플랫폼의 구름다리를 통해 블라디보스토크 역 광장으로 내려섰다. 시베리아 동부 끝에 있는 대도시의 어둠에 덮인 아침은 춥고 음산했다.

 

나는 스마트폰에 저장된 앱이 지정한 도로를 휘청거리며 걸었다. 큰 길을 건너 비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아파트 단지 안을 뱅뱅 돌았다. 지도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건물로 가는 코스 앞에 커다란 축대와 담장이 막아섰다. 지도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하고 다시 큰 도로로 나와 다른 방향으로 목적지를 찾았다. 바닷가 도시의 강풍으로 몸은 얼어갔다. 이번에는 스마트폰의 커서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맹추위가 폰까지 얼려놓았다. 무거운 트렁크를 끌고 숙소 주위의 눈 덮인 언덕길을 오르내렸다. 집찾기의 망령이 또 날 괴롭혔다.

 

이번에도 구세주가 나타났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키 큰 백인이 커다란 개를 끌고 산책 중이었다. 행인 하나 없는 길에서 방황하는 내 앞에 서방의 선지자가 나타나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게다가 그는 비러시아 백인이어서 영어도 능통했다. 그는 개를 끌고 언덕길을 오르내리더니 몇 분만에 숙소를 찾아냈다.

 

<블라드 마린 인>이라는 호스텔은 러시아의 오래 된 해운회사가 세운 건물로 수익창출을 위해 건물의 일부를 여행자 숙소로 리모델링했는데, 과거 선원들이 머무는 여관이었다. 1백 년 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선원들이 보트카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는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그려졌다. 실내가 깨끗했고 시설 좋은 샤워실과 흡연실이 따로 있었다. 배정된 침대에 누워 커피 한 잔을 마시니 혼자 세상을 다 정복한 듯이 성취감에 젖었다.

 

한숨 자고 대낮에 일어나 도시를 구경하러 나섰다. 블라디보스토크 항만관리소 건물 안을 통과하니 부두가 나왔고 거대한 러시아 군함들이 줄지어 떠 있었다. 영하 20도였는데, 바다는 꽁꽁 얼어 있었다. 부동항을 차지하려고 러시아가 기를 쓰고 남하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러시아가 부동항을 찾지 말고 영하 38도에도 얼지 않는 바이칼에서 돛단배나 띄우며 자연을 만끽했다면 이웃 약소국에 피해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한반도와 가까운 이 도시에 구한말부터 얼마나 많은 한인들이 들러 망국의 한을 달랬을까 싶다.

 

한국음식점에서 늦은 점심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다. 주인은 64세의 한국인으로 이 도시에서 30년을 살았단다. 그는 러시아의 미래가 없다고 성토했다. 70년간의 공산주의 썩은 이념을 청산하는데 70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수천 명을 태운 미국의 호화유람선이 와서 돈을 쓰려고 해도 몇 푼짜리 입항료를 바가지 씌워 배를 못들어오게 하는 관료들의 썩은 정신을 개탄했다.

 

한국도 마찬가지였다. 재작년 나는 모 정부문화기관의 상임감사 공모에 나섰다. 예술가 정책을 전면 수정해야한다는 경영계획서를 제출하고 전문가 그룹의 면접까지 통과해 최종후보로 청와대에 올랐으나 선정자는 청와대 권력자의 친족이었다. 면접일 아침 한 무리의 박수부대가 한 면접자를 호위하며 법석을 떨었는데, 마치 다른 면접자들에게 <내가 권력자에게 내정된 사람이고 너희들은 들러리야>라고 말하며 자기과시를 하고 있었다.

 

선정자는 취임 후에도 사내 임원들에게 <자신은 000의 빽으로 들어왔다>고 떠들고 다녔으니 기본 인성마저 결여된 인간이었다. 문화분야에서 이러한 엉터리 공모제도가 계속 되고 있고, 문화관광부 관료출신의 <문피아>와 이 정권의 핵심과 연결된 가짜 전문가들이 이 나라 문화를 황폐화시키고 있는데도 이 정권은 <문화융성>을 외치는 것이 부패한 러시아 정부와 다를 바 없었다.

오후 늦게부터 엄청난 눈폭풍이 몰아쳤고 도시는 하얀 눈보라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30분 이상 얼굴에 동상을 입을 정도로 걸었으나 숙소로 가는 길을 잃었다. 중년의 남자에게 부탁하니 날 근사한 사무실로 데려가 인터넷으로 숙소를 찾아주고 콜택시를 불러줬다. 눈보라 속에서 날 구해준 착한 사마리아인은 택시비까지 지불할 기세였다. 나는 그의 호의에 찬사를 보내며 숙소로 돌아왔다. 러시아 여행 내내 눈이 내리지 않는 것을 불평했으나 러시아의 눈 폭풍은 목숨이 걸릴 정도로 위험했다. 나는 무사귀환을 기념하며 맥주를 마셨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오전 11시에 떠나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으로 떠날 준비를 했다. 어두컴컴한 거리에 무릎까지 눈이 푹푹 빠졌다. 무거운 트렁크를 질질 끌며 블라디보스토크 역 광장으로 도착하니 하늘이 밝았다. 지하도 안까지 눈이 가득 쌓였다.

 

수십 대의 제설차 군단이 도로를 휘젓고 다녀도 폭포처럼 내리는 눈을 막을 수가 없었다. 인도와 뒷골목만 전담하는 미니 제설차가 따로 있을 정도로 러시아는 눈과의 전쟁이 일상화된 나라다. 집 앞마다 가래로 눈을 치우는 시민들이 부산을 떠는 광경은 신기했다. 눈을 빨리 치우지 않으면 내일이 더 힘들다는 것을 알고 온 도시가 눈치우기 싸움에 나선다.

 

공항버스를 타려고 한참을 노력했으나 차가 오지 않았다. 눈폭풍으로 도시가 마비됐다. 한 시간을 씨름하다가 택시를 겨우 잡았으나 택시가 도로를 엉금엉금 기어갔다. 차가 수시로 헛바퀴를 돌았고 기사는 삽으로 눈을 치웠다. 택시는 네 시간 걸려 공항에 도착했고 결국 비행기를 놓쳤다. 항공사를 찾아가니 다음날 비행기를 타려면 추가비용을 내야 한단다. 택시비로 거액을 쓴 터라 서울의 지인에게 SOS를 쳤고 몇 시간 후에 송금을 받았다. 공항 대합실에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공항 구석에 앉아 포도주를 마시며 눈 내리는 러시아 풍경을 감상했다.

 

17박 18일의 러시아 여행의 말미에 섰다. 황혼의 길목에서 나는 한 겨울에 동토의 시베리아를 느린 열차를 타고 가로 질렀다. 공산혁명 시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한 중부시베리아의 황량한 벌판을 지나며 닥터 지바고 속으로 들어갔다. 거대한 설국, 자작나무 바다, 맹추위와 황량함, 눈폭풍,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인들.....

 

이번 여행은 즐기자고 떠난 관광이 아니었다. 가장 가난할 때 떠난 여행이었다. 가장 우울할 때 떠난 여행이었다. 가장 외로울 때 떠난 여행이었다. 마치 누가 나를 강제로 끌고와 춥고 황량한 시베리아 벌판에 던져놓고 다시는 지난 세월처럼 살지 말라며 일깨워 준 것 같았다. 여행의 동반자도 없어 누구랑 얘기도 나누지 못했다.

 

나는 침묵의 순례자가 돼 사각의 차창 너머로 순백의 자연과 교감하며 삶의 가치를 깨달았다. 여로의 끝이 보이자 가슴은 따뜻했고 머리는 무언가로 차올랐다. 귀로의 비행기에서 사할린 섬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를 내려다보며 나는 새로운 미래와 또다른 여행을 꿈꾸었다.

 

(시베리아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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