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회가 개원하면서 정세균의장이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한 이후 곳곳에서 개헌화두는 그치지 않고 계속된다. 국회 내에서도 이미 203명이 개헌을 해야 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개헌정족수가 확보되었음을 뜻한다. 과연 그럴까.

 

총론에서는 그러한 추론이 가능하지만 각론에 들어가면 어림도 없다는 주장이 먹힌다. 지난 9월23일 국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나라 살리는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출범식 및 토론회는 그러한 현실적 애로가 적나라하게 노정되었다. 이름 그대로 개헌이 ‘나라 살리는’ 일이 되려면 어떻게 헌법이 고쳐져야 된다는 합의가 먼저 이뤄졌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었다.

 

나 자신도 창립회원이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수락했을 뿐 출범식 당일에야 뜻을 같이하는 동지들과 면대를 했을 정도니까 시민단체로서의 기틀을 갖추는 게 시급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짜임새는 제법 알뜰하게 구성되었고 토론회에 참여하는 인사들도 거리낌 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힘으로서 풍성한 담론의 장이 마련된 것은 망외의 수확이었다.

 

더구나 단체의 틀을 몇몇 주도자들이 이끌어가는 형태를 지양(止揚)하고 단순 운영위원제와 창립회원만으로 짜여있어 관료화되어가는 시민사회단체의 시큰둥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더욱 바람직스러운 바였다.

 

특히 딱딱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출범식 정식순서에 한국오페라단의 바리톤 세분이 중후한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3곡의 희망을 노래하여 분위기를 띠운 것은 흔히 보지 못하는 백미였다. 앵콜을 청하지 않아도 스스로 응한 것은 국민들이 말은 하지 않아도 개헌을 얼마나 바라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과 똑같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끔 만들었다.

 

김무성 김부겸 남경필 등 세분의 대선주자들은 각기 준비한 축사를 통하여 개헌당위성을 확인했으며 김종인은 기조강연을 맡아 20대 국회말까지 개헌이 확정되면 내년도에 당선한 대통령은 잔여임기 2년 몇 개월을 포기하고 물러나면 된다는 발언을 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토론회가 종료될 즈음 패널로 나온 중앙일보 논설위원 전영기가 “임기축소를 주장한 김종인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하여 좌중을 웃겼다. 나는 플로어 토론자로 나서 “대통령은 물러나고 싶어도 권력을 장악한 참모들이 놔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내년 대선 전에 개헌이 이뤄져 새로운 헌법 하에서 대통령선거가 치러져야만 한다.”고 말했다.

 

이 날 토론회는 이상수 전 장관이 좌장을 맡아 능숙하고 합리적으로 토론회를 이끌었다. 주제발표는 이각범 카이스트교수와 강원택 서울대교수가 맡았으며 패널은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원장, 우윤근 국회사무총장, 권성동 국회법제사법위원장, 박찬수 한겨레신문논설위원, 전영기 중앙일보논설위원 등이 참여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많은 인사들이 시대적 현안으로 떠오른 개헌문제에 대해서 어떤 발언이 나올지 궁금했던지 지리를 뜨는 사람이 매우 적었다. 이상수는 사회도중에 남아있는 인사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예의도 잊지 않았다. 주제발표자인 이각범은 무섭게 변하고 있는 세계의 흐름에 맞춰 제도와 의식을 고쳐야 한다는 점을 먼저 부각시켰다.

 

그동안 권력집단과 정치집단이 개헌을 주도해 왔지만 이제는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당당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제왕적대통령을 극복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낡은 시대의 논리를 벗어나 새 시대의 진운에 우리가 진전하기 위한 것이라고 갈파했다. 특히 저출산 초고령 등의 문제와 북핵 안보위기 등도 거론하며 승자독식의 헌법을 바꿔 이념 지역 계층 간의 갈등구조 등을 타파할 수 있는 혁신이 개헌의 요소임을 지적했다.

 

강원택은 정치학자로서 어떻게 ‘87년 체제를 극복하고 한국정치의 개혁과제를 바꿀 것인지에 대한 문제를 끄집어냈다. 대통령의 권한이 너무 강하여 국회의 견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명분론에 입각하여 내각제, 이원정부제, 4년 중임 대통령제 등 여러 가지 권력구조에 대한 담론을 펼쳤다. 분권형 권력시스템에 대해서는 두 개의 태양은 곤란하다면서 부정적이었다.

 

정치권이 개헌논의를 이끌고 가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못하지만 차기 대권주자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그것을 토대로 차기정부에서 사회적으로 공론화하여 개헌의 방향을 마련해야 된다는 결론이었다. 토론자로 나선 강대인은 오랫동안 개헌론을 펴왔던 입장을 되풀이했으며 우윤근은 현실적인 접근법으로 국회개헌특위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권성동이다. 그는 현직 법사위원장으로 10월 중에 국회개헌특위가 구성될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여 박수를 받았다. 현직 언론인 두 사람은 개헌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서는 추호도 의심하지 않지만 정치현실이 이를 용납하겠느냐 하는 의구심을 나타냈다.

 

신문기자의 감각으로 볼 때 청와대에서 찬성하고 나오지 않는 한 개헌세력은 권력구조와 임기문제 등에서 치열한 대립을 할 가능성이 많고 국회 내에서도 쉽게 풀리기 어렵다는 현실인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아무튼 이 날 출범식과 토론회에는 지난 국회 때부터 줄기차게 개헌을 주장한 이재오와 정의화 원혜영 김원기 나경원 등이 참석하여 관심을 높였다.

 

지금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개헌문제가 일부세력의 제동으로 무겁게 가라앉는 것을 막으려면 국민적 관심사가 되도록 적극적인 자세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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