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제일야당의 전당대회가 잇달아 열리면서 자연스럽게 각 당의 대통령후보 예정자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자천 타천의 후보라고 하지만 그 중의 어느 한사람도 범연한 사람은 없다.

 

나름대로 정치를 해오면서 갈고닦은 정치적 기반이 타인을 압도하기 때문에 대선후보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역대 선거 때마다 이른바 잠룡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정치인들의 프로필이 드러난다.

 

치열한 각축전을 끝으로 전당대회에서 우열이 판가름 나는데 어떤 때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인물이 크게 부상하기도 한다. 후보로 선출되지는 않더라도 후보에 버금가는 득표를 통하여 자신의 정치역량을 내외에 과시하기도 하며 차기선거에서는 권토중래하여 뜻을 성취하는 이도 있다.

 

지금 거론되고 있는 많은 대선주자들은 어느 누구도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저 사람만은 안 된다.”하는 인물이 없다. 아직 발도 제대로 떼지 못하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는 시점이어서이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인물이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다. 그는 지난번 본란을 통하여 지적했던 바와 같이 아직 정치에 입문조차 하지 않은 정치 신인이다.

 

반기문은 지난번 귀국했을 때 사무총장 임기를 끝내고 돌아오면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겠다고 말하여 대선출마 의지를 밝힌 것으로 언론에서는 치부하고 있다. 더구나 충청권의 맹주역할을 했던 김종필을 방문하여 충청권의 기대를 한 몸에 받을 수 있는 일종의 정치적 제스쳐를 보여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그에 대한 품평은 높다. 외교관으로 잔뼈가 굵었고 외무부장관을 거쳐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으니 세계적인 이목이 집중되는 자리에 올랐다. 5년 중임으로 10년을 채우고 금년 말이면 10년 임기를 끝내고 귀국한다.

 

그를 한국정치계에 끌어들인 건 여당과 야당 모두의 책임이다. 정상적으로 본다면 외교관 출신이 정치에 입문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온갖 파벌과 계파 그리고 이해가 얽혀있는 정계의 파란만장한 조직 속에서 성장한 정치인들의 노련미를 외교관 출신이 따라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엄청난 정치자금과 지구당을 비롯한 조직 장악 그리고 국민의 여론을 등에 입어야하는 정치세계의 난맥을 풀어헤쳐 나가는데 외교관 출신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은 세상사람 모두가 아는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반기문은 여당과 야당 모두가 러브콜을 보냈다.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시절에 이미 반기문 영입론이 나왔다. 이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이 권노갑이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의 고문으로 있다가 현재 국민의당으로 옮겨 활동 중이다. 김대중의 오른팔 역할로 한국정계에서 가장 비중 높은 원로 정치인으로 평가받으며 민추협 공동 이사장이기도 하다. 권노갑은 “반기문은 야당과 더 가까운 사람이다.”라고 일방적으로 끌어당겼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 당시만 해도 반기문의 입장은 여야 어느 쪽에도 편중되지 않았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가면서 어느 사이에 여당 사람처럼 굳어졌다. 그것은 사실상 후계자를 키우지 않는 박근혜가 미국 방문시에 일부러 반기문을 만나 단독회담을 가질 때부터 모락모락 연기는 피어올랐다.

 

친박은 이를 반기문 후보로 내정된 것처럼 부풀리고 있기 때문에 다른 후보예정자들의 심기까지 불편하게 만들면서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점점 더 굳어지고 있는 듯하다.

 

따라서 반기문이 대선에 출마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본인이 나온다고 확언한 것은 아니지만 말의 행간을 살피면 반드시 새누리당 경선에 출마할 것으로 본다. 여론조사에서도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으니 그의 주위에는 알지도 못하는 정치패거리가 형성되고 있다.

 

이에 대하여 느닷없이 더불어민주당 대표 추미애가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때가 좀 이른 느낌이면서도 이미 늦었다. 때가 이르다는 뜻은 아직 대선의 막이 올라가지 않았기에 구체적인 활동이 없는데 건너짚고 있다는 것이고, 이미 늦었다는 얘기는 반기문의 결심은 벌써 굳어 있다고 보이기 때문이다.

 

추미애는 방송초청연설에서 “유엔 사무총장은 각국 정부의 비밀 상담역을 해야 하기 때문에 퇴임 직후에는 어떤 정부자리도 사무총장에게 제안해서는 안 되고 본인도 승낙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며 출마해서도 안 되고 출마한다면 나라의 국격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했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있었던 쓰라린 정치규제법을 회상하게 만드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과거에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했던 사람이 두 사람이나 자기 나라에 돌아가 대통령에 당선한 사례는 뭐라고 표현해야 옳을까. 유엔 규정이 다른 나라의 대통령 후보 자격까지 규제할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사무총장이 출마한다고 대한민국의 국격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의 출마가 진정 국격을 떨어뜨린다면 그는 당선하지도 못할 것이며 나를 비롯한 모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나라의 격을 떨어뜨릴 수 있는 반기문의 대선출마 저지운동에 나설 것이 확실하지 않은가? 반기문이 출마하고 말고는 그의 판단에 맡겨야 하는 것이지 타인이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이 아니다.

 

오랫동안 유엔에서 연마한 외교역량을 국내정치에 유입하여 합리적인 타협과 건전한 정치문화를 발달시킬 수 있다면 국격은 오히려 상승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선에 나오고 안 나오고는 반기문에게 맡기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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