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최대 권력형 비리 의혹의 중심에 선 최순실씨 파문이 정국을 송두리째 집어삼키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 요구가 하루 만에 심각한 역풍을 맞았다.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야당의 한 대권후보는 박 대통령의 개헌 발언을 두고 "썩은 고기를 덮어 보려던 비단보"였다고 비아냥 거렸다.

 

여의도 정치의 실종과 함께 최근 한국 정치권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생산적이거나 발전적인 삶의 모습이 아닌 죽기 살기 식의 치킨 게임(game of chicken) 으로 가고 있다는 흔적들이 여기 저기서 발견된다.

 

한국정치가‘이판사판’의 극단적인 상황이 연출될 정도로 발전도 없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면 바로 정치인들 한사람 한사람의 저질스럽고도 비겁한 자질 때문이라고 단언(斷言)한다.여야를 막론하고 정당들은 국회의원 머리숫자를 무기로 각개전투가 아닌 집단행동으로 지금까지 자신들의 힘을 과시해 왔다.

 

어떤이는 제도보다 사람이 먼저여야 한다는 주장을 했고 또 다른이는 사람보다는 제도가 앞서야 한다고 으르렁 거렸다.자신이 하면 '로멘스'고 다른사람이 하면 '불륜'인것 처럼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 그들만의 뻔뻔함에 배신감마저 든다.

 

지난 23일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권을 향해 기습적으로 개헌(改憲)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왜? 그랬을까를 두고 정치권과 국민들의 의견은 분분(紛紛)했다. 국민들 보다는 여의도 뒷골목 정인(政人)들이 몰리는 탁주집 식탁에는 첫째, 둘째, 세째들이 모여 개헌이라는 안주를 받아들고 으르렁대며 씹어대기 시작했다.

 

뒷담화를 즐기는 정객(政客)은 탁발 한사발을 앞에두고 최순실 게이트로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 임기 후반에나 나타나는 레임덕 현상을 돌파하고 정국을 주도할 목적으로 개헌카드를 꺼내든 것이라고 했다.

 

개헌을 하려면 헌법을 고쳐야 하고 헌법을 고친다는 것은 그리쉬운 일이 아니다. 이래서 고치고 저래서 고쳐질 헌법이라면 그것이 성문법이라고 할 수 없다.

 

백과사전에는 개헌(改憲)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성문헌법에 규정된 개정절차에 따라서 헌법의 기본적 자동성(自同性), 즉 근본규범을 파괴하지 않고 헌법조항을 수정·삭제 또는 증보하여 의식적으로 헌법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며 헌법은 국가의 근본법이므로 그 변경에는 신중을 요해야 한다고 써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7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더 이상 개헌 논의를 미룰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며 임기 내 개헌을 천명하고 나서자 정치권이 술렁거렸다. 풍구질만 요란했던 군불에 드디어 불이 붙은 격이다.

 

그간 여야 정치권을 포함한 각계 전문가 그룹에서는 현행 헌법이 지난 30년간의 시대적 변화를 담기에는 너무 낡았고 우리사회가 이제는 한계에 봉착한‘87년 체제’정치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개헌 필요성이 적극 제기돼 왔지만 대부분 함구(緘口)하고 있었다.

 

개헌에 적극적인 소수의 의원들만이 한국 정치가 새시대에 맞는 맞춤옷을 입어야 한다고 목소리 높여 외쳤지만 박 대통령은 “국정 블랙홀”을 이유로 개헌 논의에 강한 거부감을 보여 왔다.

 

자신의 임기동안에는 절대적으로 개헌의 개자도 꺼내지 못할 정도로 개헌을 부정했던 박 대통령 이었다. 그런 대통령이 입장을 바꿔 기습적으로 개헌 카드를 들고 나왔으니 정치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개헌은 이제 좋던 싫던 정치권에서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였다. 아뿔사! 그러나 그것도 단 하루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대통령의 개헌 발언 몆시간 뒤 최순실씨가 사전에 대통령의 연설문을 받아봤다는 JTBC의 보도가 나오면서 청와대가 그토록 부정했던 대통령 연설문 진실여부가 사실로 들어났고 청와대는 백기를 들었다.

 

결국 '비선 실세에 의한 국정 농단' 이라는 의혹을 받고 있던 박근혜 대통령이 연설문 사전 유출 파동에 대해 개헌카드를 빼들은지 하루만인 25일 3시 45분 기자회견을 열어 대국민 사과를 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그리고 정치권을 격랑속으로 몰아넣었던 개헌 동력은 무기력해 졌다. 물론 개헌이 시대적 사명이고 한국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당연하게 논의되어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날 박 대통령은 1분 40여 초 분량의 짧은 사과문을 낭독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그토록 감추고 싶어 했던 최순실씨의 연설문 작성에 관련된 사실을 시인했다.

 

박 대통령은 "과거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연설과 홍보 분야에서 선거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만 말했다.박 대통령은 일부 연설문과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도움을 받은 적 있으나, 청와대 보좌진이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해명했다.

 

박 대통령은 "좀 더 꼼꼼하게 챙겨 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그러나 거기까지가 전부였고 이후라는 말은 없었다.

 

박 대통령의 사과발표로 개헌추진은 정부 주도가 아닌 오로지 정치권 주도로 이뤄질 가능성은 더욱 커졌고 청외대와 대통령의 손익 계산법은 하루만에 물거품이 됐다. 개헌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끝까지 레임덕(임기말 정권누수) 현상을 막아보겠다는 청와대의 꼼수 역시 하루만에 사라졌다.

 

대통령이 머리를 숙였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더욱이 포털에서는 '탄핵'이라는 키워드가 전체를 도배하면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서 꿈쩍도 않고 있다.

 

“오늘로써 대통령발 개헌 논의는 종료되었음을 선언한다”고 밝힌 야당 정치인의 비장한 모습에서

비틀거리는 대한민국의 정치를 보았다. 정말 이대로 괜찮은 건지 청춘(靑春)들에게 부끄러운 저녁이다.

 

/중앙뉴스/ news@eja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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