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출처 / 구글


 

사진 한 장

   최도선

 

 

삼십 년이 지났지만

가슴속 사진 여전하다

 

그러나 그에게 달려간 적 없다

물길이 가로막혀서가 아니다

심장이 차가워져서도 아니다

 

눈 속에 무릎까지 빠지며 사십 리 길을

자전거 타고 오다 길에 부리고 왔던 날 저녁

우리는 흩날리는 눈발 속에서 어두워져만 가고

연탄난로 위에 물 끓는 주전자 뚜껑소리만 달그락거렸다

 

달빛 들어오는 좁은 방에서의 약속이

아직도 옥죄어 오지만

길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어

그렇게 그를 눈 속에 돌려보내고

 

젖은 바닥에 달라붙은 낙엽처럼

끝내 떨어지지 않고 앙상히 미라가 되어가듯

한쪽 가슴에 여전히 달라붙어 있다

 

최초의 미소가 그늘이 되어

아직도 통증으로 도져오는

가슴으로 피는 사진 한 장

당신과 나의

따뜻하고 아픈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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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저마다 어쩌면 따뜻하고 아픈 꽃 하나 쯤 가슴속에 지니고 산다.

그 향기는 어느 날 찌르는 회한으로 다가오기도 하며 어느 순간엔 철없던 환호이며 설레임이며 심지어는 삶을 지탱해 내게 하는 동력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위 시의 화자는 샘물처럼 맑은 열정만으로 건널 수 없었던 젊은 날의 아픈 인연을 가슴 속 사진 한 장으로 간직하고 가끔씩 눈 내리는 겨울날 더욱 애틋하게 꺼내어 본다. 이 세상 어디엔가 또 한 사람도 그러할 것이라는 그리움을 간직한 채...

겨울 나목들은 여름날의 짙푸른 추억으로 한 겨울을 견딘다.

눈발 날리던 날 첫사랑 그 소년이 하얀 언어들을 가슴 언저리에 뿌린다.

현재의 내가 어떠한 사막의 자리에 있다해도 그토록 연두,  연두빛 시절의 내가 있었으므로 나는 후패하지 않으며 어른으로서 의연하게 전진한다.

이 시리디 시린 전장에 단비 같은 너와 나의 사진 한 장의 힘으로...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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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도선 시인

198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등단

시집 / 『겨울기억』 『서른아홉 나연씨』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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