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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벽

박무웅

 

 

어린 날 우리 집에서 가장

따뜻한 곳은 흙벽이었다

한겨울에도 햇살 아랫목이었다

가난하면 배도 고프지만

더 고픈 것은 등이다

그 고픈 등을 흙벽에 대고 있으면

따뜻한 국물 맛이 등을 타고 퍼졌다

그 수직의 위안이

내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었었다

 

쩍쩍 갈라진 양지 벽에서 마르던

한겨울 푸릇한 색깔을 하고 있던 시래기 타래는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풍경이었지만

가장 따뜻한 겨울 햇살이

오룻이 모인 맛이었다

 

고드름이 녹아 뚝뚝 떨어지던

한낮의 흙벽,

창호지 문의 문살같이

고드름 그림자가 비스듬히 녹고 있었다

 

한겨울 가난한 집의

마음씨 좋은 안방 같던

따뜻한 흙벽

                 

               -  박무웅 시집 『공중국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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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고 살았던 나 어릴 적 외갓집 모습이 따스하게 다가온다.

농기구며 삼태기 그리고 주렁주렁 시래기가 햇볕을 먹으며 흙벽에 모여있던 황톳빛 그 벽, 오늘은 문득 할머니가 끓여주던 시래기 된장국이 그리워진다.

사실 인간의 근원이기도 하며 인간과 가장 친근한 것이 흙이다. 흙은 생명이며 양식이며 뿌리이다. 난방이 허술했던 옛 시절엔 흙벽의 단열과 보온성이 겨울을 나는데 도움이 되었으며 여름철 무더위에도 시원한 맛을 주었다고 한다.

복잡한 도시의 매연과 소음이 주는 콘크리트 피로감, 더구나 어지러운 시국에 대한 피로도가 내려가질 않는다. 시린 등 기댈 흙벽 같은 위로는 보이지 않고 이 나라의 국민이라는 것이 창피하고 참담하여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지기도 한다.

 위 시의 화자가 소년 시절 배고픔과 추위를 기대어 달랬던 따스한 흙벽에 나도 기대어 보고 싶다. 탐욕의 화신들이 흙의 정신을 알았더라면 이 나라가 이 지경이 되진 않았으리라는 생각에 못내 가슴이 아픈 오늘 흙벽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그립다. 고향의 흙내음 물씬 나는 시 한수가 주는 위로에 참 감사하며...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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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무웅 시인 /

충남 금산 출생

1995년 <심상> 등단

월간 <시와표현> 발행인 겸 편집주간

한국 시인 협회 감사 역임

시집 / 『소나무는 바위에 뿌리를 박는다』 『내 마음의 UFO』『공중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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