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릉은 성덕왕의 둘째아들이자 경덕왕의 형인 효성왕(孝成王, 742薨)으로 판단

▲  가릉 석물 추정  발견   © 박미화 기자
▲  낭산추정 고분지에서 통일신라시대 가릉 발견    © 박미화 기자



[중앙뉴스=박미화기자] (재)성림문화재연구원(원장 박광열)은 9일 낭산 추정 고분지에서 통일신라시대 가릉(假陵)이 발견됐다.

 

경주시의 의뢰로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발굴조사를 하고 있는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재)성림문화재연구원은 경상북도 경주시 구황동에 위치한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 내 폐왕릉지로 추정되는 고분지 유적을 발굴조사했다.

 

이 유적은 금제여래좌상(국보 제79호)과 금제여래입상(국보 제80호)이 발견된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국보 제37호)에서 남쪽으로 약 135m 지점의 논 경작지로서 이 일대는 오래전부터 홍수로 인해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 신라왕릉과 관련된 석재유물(면석, 탱석 등)들이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다.

 

학계에서 신문왕릉, 성덕왕비인 소덕왕후, 효성왕비인 혜명부인, 민애왕릉 등의 폐왕릉지로 비정되거나, 의상의 탑돌이와 관련하여 황복사의 목탑지로 추정되고 있는 중요 유적지이다.

 

경주시에서는 이러한 유적의 중요성을 감안하여 유적의 훼손을 방지하고 폐왕릉지에 대한 향후 복원‧정비를 위해 이번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신라 왕릉 조영에 사용될 탱석, 면석, 지대석, 갑석, 미완성 석재 등 다량의 석재가 확인되었으며, 더불어 석재 주변으로 8~9세기가 중심연대인 건물지와 담장, 회랑지, 도로(너비 16~17m) 등과 함께 연화보상화문수막새, 귀면와, 습부정정(習部井井), 습부정정(習府井井), 정(?)원사(鄭元寺) 명 명문기와 등 300여점의 중요 유물이 출토됐다.

 

발견된 갑석과 지대석, 면석과 탱석으로 추정한 왕릉의 직경은 약 22m로 전경덕왕릉(765년)과 비슷한 규모이다.

 

조사 결과 출토된 왕릉 관련 석재 다수가 미완성인 점, 후대 조성된 8~9세기 건물지 시설에 재활용되어 사용 되었던 점, 석실 내부를 만들기 위한 부재가 확인되지 않은 점, 탱석의 십이지신상이 잘려나간 점 등 여러 정황으로 판단 할 때, 당시 왕을 위하여 사전에 능침 조영을 준비하던 도중 어떠한 사유로 축조공사를 중단하고 왕릉을 설치하지 않았던 가릉(假陵) 석물로 추정된다.

 

추정 왕릉 주인공은 발굴조사 결과와 십이지신상 형식으로 볼 때, 성덕왕의 둘째아들이자 경덕왕의 형인 효성왕(孝成王, 742薨)으로 판단된다. 조사된 건물지는 일반적으로 신라왕경에서 확인되는 주택이나, 불교 사원 건축과는 차이가 있어 관청(습비부 관련)이나 특수한 건물의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도로유구는 신라 왕경내 현재까지 발굴조사 된 다른 도로보다 구조적으로 튼튼하게 설계된 것으로서 왕경의 남북대로와 동서대로의 너비가 약 16~17m 정도인 점으로 볼 때, 본 유적의 도로가 왕경의 방리구획에 의해 연결되거나 전황복사지 사역 혹은 왕릉 조영과 관련하여 대형의 미완성 석재를 이동하기 위한 특수 목적으로 가설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향후 이러한 발굴조사 결과를 토대로 통일신라시대의 왕릉 축조과정과 능원제도 및 신라왕경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