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한나 기자


 

택배 되어 온 남자

권 애 숙

 

  수령증에 도장 꾹! 눌러 찍고 건네받은 상자가 잠깐 흔들, 거렸는데요 잘 키워봐라 품종이 괜찮은 거다 상자 밖으로 뛰어나온 남자씨 숙인 고개 살풋, 들었는데요 흐흐흐 구미에 당기는 품종이군요 화끈한 식탁을 기대해도 되겠어요

  나른한 세월 내 뜨거운 혀끝에 줄기줄기 불끈불끈 근육 세우며 주렁주렁 미끈미끈 약이 올랐는데요

  청양할매 이천 평 밭에 남자를 키워 빻아 먹고 찧어 먹고 갈아 먹고 여든 세월에도 청청한데요 아아악, 남자 하나 베어먹다 내 한 세상 그만 눈물 콧물 범벅이 되었는데요

  반쯤 뜯어 먹힌 남자가 식탁 끝에 넘어져 더 먹고 싶어? 은근히 쳐다보는데요

 

 

- 권애숙 시집 『맞장 뜨는 오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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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늘 봄날 꽃의 얼굴로 향기롭게 다가온다. 한 사람을 오래오래 사랑한다는 것처럼 꽃다운 일 있으랴마는 때때로 찾아오는 그 매운 맛이란 처음엔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내 이야기 같아서 고개 끄덕이며 빵! 웃음을 터뜨린 시다.

결혼 생활을 정겨운 해학으로 풀어내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찡하게 재미있는 시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이다. 어쩌면 그 만남 중에서도 배우자와의 만남은 가장 큰 모험인지도 모른다. 그 인연의 맛은 늘 달콤한 맛만은 아니다. 눈물 나도록 매운 순간들도 때론 고독한 갈등의 순간들도 이겨나가야 하는 나 자신과의 끝없는 싸움인지도 모른다. 그런 애환을 한바탕 웃음으로 승화하는 시인의 마음이 푸근하게 읽혀진다. 반쯤 뜯어먹힌 남자를 바라보는 눈에 맺힌 것은 아마도 동병상련의 눈물인지도 모른다.

‘좋은 시는 재미있는 시’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게 한 시다! 내가 선택한 이 삶의 맛을 이왕이면 기쁜 마음으로 다시 안아보자.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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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애숙 시인/

경북 선산 출생

1994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1995년 월간 <현대시> 등단

시집 『차가운 등뼈 하나로』 『카툰 세상』 『맞장 뜨는 오후』

부산작가회의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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