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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다

이동훈

 

 

민들레 씨나 졸참나무 씨다

우리 동네 김 씨나

씨의 족속이긴 마찬가지인데

민들레 씨는 새가 먹고

졸참나무 씨는 다람쥐가 먹고

동네 김 씨는 혼자 먹는다

먹고 싼 것이 또 씨가 되어

씨로 열매 맺고

씨로 나누어 먹고

씨로 돌아오는 것이니

씨 뿌리는 일은 과연 생산적이다

그렇다면 그야말로 몹쓸 짓은

씨 말리는 일이다

우리 동네 김 씨는

민들레 씨보다 부지런해 보이고

졸참나무 씨보다 힘세 보이지만

땅만 파는 농부라는 이유로

쉰이 다 되도록 총각이다

오늘도 씨불씨불 하는데

씨 뿌리지 못해

말로만 씨부리는 탓이다

 

 

                        - 시집 『엉덩이에 대한 명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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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파종의 계절이다. 씨를 뿌려서 종족을 보존하고 이어나가는 것은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다. 위 시는 재미있게 느껴지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웃픈 현실의 이야기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생명체다. 배우자를 만나고 자녀를 생산하고 그런 울타리를 일구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이 인간의 고귀한 숙명인지도 모른다. 혼자 살아가는 것도 물론 개인의 선택이며 존중해야 할 삶이지만 말이다.

점점 더 1인가구가 늘어나는 시대이다. 위 시에 등장하는 동네 김 씨 같은 사람들이 많은 현실을 안타까와하는 화자의 마음이 훈훈하게 읽혀진다. 올봄엔 우리나라에 화합과 상생의 씨앗들이 뿌려져서 꽃들이 피어나고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면 좋겠다. 혼란 중에 탄식하던 입들일랑 이젠 닫고 봄이 오는 저 길로 평화의 씨 뿌리러 나가보자.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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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훈 시인 /

1970년 경북 봉화 출생

2009년 월간 <우리시> 등단

시집 / 『엉덩이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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