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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잎에게

나종영

 

 

풀잎, 네 이름을 부르면

문득 후투티새가 생각나서 눈물이 난다

딱 한번 모습을 보여주고 어디론가 휘리릭 날아가 버린

어린 날의 후투티새,

너도 그렇게 초여름의 실바람에도

상심의 칼날에 베일 것 같아 나는 눈물이 난다

사람들은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고

짓밟혀도 꺾이지는 않는다고

너를 꿋꿋한 민초에 은유하지만

나는 민초 그 벌거숭이 이름만 들어도

베옷에 배인 붉은 상처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리다

은사시나무 이마를 스치고 오는 바람에도 눕고

은사시나무 잎사귀의 반짝거림에도 일어서는

풀잎, 네 이름을 부르면

불현듯 떠나간 후투티새가 날아와 맨가슴을 쪼고

내 몸은 나도 모르게 풀잎, 풀잎,

후투티 울음소리 같은

녹야(綠野)의 휘파람 소리에 몸을 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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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시는 시인의 오래 전 작품이다.  역사에 남을 지난겨울이 자꾸만 아파와서일까? 세월이 흘러가도 가슴을 울리는 웅변같은 시다. 음미해 볼수록 두 손을 모으게 하며 처연한 결기를 다시 일으켜 주는 시라는 생각에 다시 모셔와 감상해본다.

한 때 풀뿌리 정책이라는 말에 고무되었던 적이 있었다. 민초들의 눈물이 잠시 마르는 듯 했던가? 모순된 인간들의 이기적 본성을 그 어떤 정책도 어찌할 수 없다는 점만 확인했을 뿐 별반 체감되진 않았다고 개탄하는 목소리들도 있었다. 절망과 배신에 무감각해져가는 풀잎 같은 사람들에게 후투티새는 날아와 줄 것인가? 위시에 등장한 후투티새는 희망의 전사이다.

  이제 우린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해야 할 시기에 와있다. 잠시 풀잎들만 할퀴고 지나가는 매의 발톱 같은 정치꾼은 필요 없다. 더도 말고 ‘민초 그 벌거숭이 이름만 들어도 베옷에 배인 붉은 상처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아리다.‘는 화자의 마음을 닮은 그런 일꾼이 선출되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풀잎 풀잎.풀잎의 마음으로...풀잎을 뇌어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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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영 (羅鍾榮)시인 /

광주 광역시 출생

1981년 창작과비평사 13인 신작 시집 『우리들의 그리움은』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 『끝끝내 너는』(창작과비평사),

        『나는 상처를 사랑했네』(실천문학사) 등

시와 경제」,「 5월시」동인으로 활동

계간 <문학들>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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