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장애 등 정신적 질환 극복하며 후배들에게 희망을 주다

[중앙뉴스=홍성완·최지영 기자] SBS 웃찾사가 한 때 개그프로그램의 최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이 있었다. 컬투의 전성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던 이 시기에 또 하나의 ‘엉터리 아랍어’ 콘셉트로 사랑 받은 ‘알까리라’ 코너의 김세아가 새봄을 맞아 봄나들이에 나섰다. 리포터와 뮤지컬, 라디오 DJ 등 다방면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그녀를 <중앙뉴스>가 만나봤다.

▲ 개그우먼 김세아     ©박주환 기자

▲ 전주의 주목받는 10대. 그러나 시련

 

김세아의 정식 데뷔는 2003년 SBS 특채 합격이다. 그렇지만 정작 방송에 출연한 것은 1998년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다.

 

당시 전주MBC ‘별이 빛나는 밤’에서는 명물로 불리는 학생들을 취재하는 코너가 있었다. 김세아는 고등학교 때부터 개그동아리 회장을 맡는 등 지역 명물로 소문이 나면서 이 코너에 출연하게 됐고, 당시 방송 PD가 김세아를 눈여겨 보면서 1년여 동안 이 프로에 고정게스트로 출연했다. 

 

김세아는 본인이 직접 코너를 개발했는데 ‘벌떼 노래방’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이 코너는 각 학교에서 노래 실력이 좋은 친구들을 모아 토너먼트 형태로 대결하는 프로로, 최종 결승에서 ‘왕중왕’전을 가리는, 지금으로 말하면 '슈퍼스타K'와 같은 프로그램이다.

 

김세아는 “당시 MBC별밤 측이 직접 코너를 개발해 오라고 해서 ‘벌떼 노래방’을 만들었다”며 “그 때는 전주의 박경림으로 불렸다”고 회상했다.

 

김세아는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에 진학하면서 바로 KBS 개그맨 시험을 치뤘다. 당시 함께 시험을 본 사람들이 정종철, 김기수, 홍종호 등이었다. 특히 홍종호는 당시 인기 그룹이었던 ‘노이즈’ 출신으로 개그맨 시험에서도 합격하는 특이한 이력을 지니게 됐다.

 

최종 시험을 남겨두고 20명의 인원이 선발됐다. KBS는 최종관문에 올라온 20명의 예비함격자들과 프로그램을 함께 만들어 시험을 치르는 공개방송 형식으로 최종 합격자를 가렸다.

 

하지만 김세아는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탈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김세아는 포기하지 않고 곧바로 MBC 공채를 준비해 예비합격자에 포함됐다.

 

MBC 개그맨 시험에서 12명의 지원자가 최종시험을 치뤘으나, 김세아는 또 다시 탈락하는 아픔을 맛봤다.

 

이 후에도 김세아는 많은 개그맨 공채 시험에서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자괴감에 젖어 개그우먼에 대한 꿈을 포기하는 상황까지 갔다.

 

꿈을 포기한 후 작가 공부를 시작한 김세아에게 다시 개그우먼이 될 기회가 우연히 찾아왔다.

 

학교 선배였던 개그우먼 이경애가 축제 때 김세아를 보고 컬투(정찬우·김태균)를 소개해준 것이다.

 

이 때는 개그맨에 비해 개그우먼이 부족했던 시기다. 컬투패밀리는 개그우먼을 찾고 있는 상황이었고, 그렇게 김세아는 컬투패밀리에 합류하게 됐다. 

 

김세아는 컬투패밀리에 정식으로 계약을 하진 않았다. 그래서 웃찾사 회의실을 왔다갔다 하면서 청소 등을 하며 막내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웃찾사 중에서 인기 있었던 코너가 ‘비둘기 합창단’으로 신인들이 잠깐씩 나와 콩트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김세아는 소속사의 또래 여자 개그우먼 2명과 그 코너에 출연해 가요를 민요로 바꿔부르는 ‘민요3총사’라는 이름으로 참여했고 그것이 첫 데뷔였다고 추억했다.

 

당시 어느 정도 반응은 괜찮았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김세아는 그저 그런 무명 개그우먼에 지나지 않았다.

 

6개월 간의 공백 이후 김세아는 드디어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기회를 갖는다. 바로 엉터리 아랍어로 뉴스를 진행하는 코너인 ‘알까리라 뉴스’를 통해 대중들에게 조금씩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것.

 

‘알까리라 뉴스’가 폐지된 이후에는 MBC 개그야의 러브콜을 받아 ‘내 사랑 나타샤’, ‘어머 정말’, ‘라이벌 뉴스’ 등 3개 코너를 동시에 참여했다.

 

김세아는 “그 때 개그코너를 1개 하든 2개를 하든 출연료는 같았다. 그런데 매일매일 대학로에서 개그공연도 해야했고, 리포터 활동까지 하면서도 개그 열정이 한참 끓어오를 때라서 3개 모두 욕심이 났다”면서 “같이 코너를 기획하던 친구들과 함께 애착이 컸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에 대한 보답이었을까? 김세아는 2006년 MBC 코미디 부분 우수상까지 받게 된다.

 

김세아는 “프로그램 3개에 참여해 개그프로그램을 기획하다 보니 제작진이 날 좋게 봐준 것 같다”며 “인지도 보다 나의 노력을 알아줬다는 점에서 참 감사하고 의미있었다”고 회상했다.

▲ 개그우먼 김세아     ©박주환 기자

▲ 다양한 활동 영역을 보여주는 개그우먼

 

김세아는 최근 공중파 3사에서의 활동은 뜸하지만, 그 외에 리포터와 뮤지컬, 라디오 DJ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특히, 풍부한 성량과 순간 대처능력에 능해 뮤지컬 쪽에서 많은 활동을 이어왔다.

 

김세아는 “보통 개그맨들이 개그프로그램을 하지 않으면 활동을 안 하는 줄 안다”며 “최근까지 정말 바쁘게 활동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나는 개그만 하는 방송인이 아니다”라며 “볼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한데, 관심 있는 분들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김세아가 개그를 등한시 하는 것은 아니다.

 

김세아는 “좋은 인연이 돼서 뮤지컬을 하게 됐다”며 “어느 순간에 개그맨들이 뮤지컬계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개그맨들의 아이디어와 접목이 되면 원래 장면보다 훨씬 재미있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고, 관객들과 호흡, 순간적인 애드리브에 능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김세아는 지난해 ‘넌센스’ 작품에 캐스팅됐다. 그러나 공연 기간 중 불안장애가 생겨 내려오게 돼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2009년 박상면, 박해미 주연의 ‘뮤지컬: 진짜 진짜 좋아해’에서 조연으로 출연, 뮤지컬에 첫 발을 들였다.

 

당시 김세아의 역할은 ‘빵집영자’라는 캐릭터로, 재미있는 노래와 함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12년에는 ‘뉴 롤리폴리’ 작품의 주조연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김세아는 “그 때 안문숙 선배와 더블 캐스팅 됐는데, 신효범, 김완성 등 다양한 분야의 분들이 출연하면서 그들과 인연이 돼 너무 좋았다”고 회상했다.

 

이 외에도 김세아는 리포터로 많은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공중파 3사에서 리포터로 활약한 김세아는 “리포터가 나와 잘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인 김세아는 채소의 이파리만 봐도 채소 이름을 알아맞힐 정도로 농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 보니 어머님들과 호흡이 잘 맞았다.

 

그녀는 “황태덕장에 촬영을 간 적이 있었는데, 황태덕장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농사를 짓고, 겨울에 덕장을 만든다. 그 때 밑동 남은 것만 보고 어떤 농산물을 심었었는지 알아맞히자, 어머니들이 ‘어떻게 알았냐’며 기특해 했다. 그래서 더 재미있게 촬영할 수 있었다”며 촬영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맛집’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에서도 김세아는 요리를 좋아해 여러 가지 많은 이점을 가지고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다.

 

김세아는 “리포터가 이런 부분에서 나와 잘 맞는다”며 “다만 기획사에 있을 시절에는 리포터를 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업계에서는 리포터를 일찍 시작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 이유는 리포터 이미지가 굳어지면 다른 예능 쪽으로 진출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런 업계의 통념을 깨고 싶었다”며 “이 같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에 2009년부터 소속사를 나와 직접 혼자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 홀로서기

 

김세아가 소속을 나와 독립을 한 것은 2009년이다. 2003년 컬투패밀리 소속으로 2008년까지 활동한 김세아는 뮤지컬을 비롯한 리포터, 라디오 DJ, 음반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해보고 싶은 열망에 독립하고 싶다는 의사를 소속사에 전달했다.

 

컬투패밀리의 정찬우·김태균은 이러한 김세아의 의견을 존중해 받아들여줬고, 이후 소속사 없이 활동 중에 있다. 이런 부분에서 그녀는 “컬투패밀리 가족들에게 늘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며 “지금도 컬투 오빠들과 자주 연락하고, 컬투패밀리와 지속적으로 연락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세아는 혼자 활동하는 것에 대한 장점에 대해 “소속사 없이 혼자 활동을 해보니 잡초처럼 모든 걸 다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게 됐다”며 “그러다 보니 다방면에서 활약할 수 있게 됐고, 어디를 가도 ‘욕 안 먹을 정도’까지는 하게 됐다”고 말했다.

 

반대로 단점에 대해서는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의 구분처럼 예능분야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며 “능력이 되면 누군가의 눈에 띄어서 예능 고정 자리까지 올라갈 수도 있겠지만, 소속사에 있는 것과 비교해서는 확실히 힘든 부분이 있다”고 털어놨다.

 

▲ ‘나도 가수다’의 ‘이소다’로 화제 모아

 

2012년 김세아는 MBC 새 개그프로그램인 ‘웃고 또 웃고’에서 ‘나도 가수다’라는 코너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새벽 1시 30분부터 2시 30분까지 방송되면서 시청률은 저조했지만, 김세아의 ‘이소다’ 캐릭터는 인터넷에서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많은 이슈가 됐다.

 

김세아는 “사실 이전까지는 성대모사를 하나도 못해서 그게 콤플렉스였다”며 “그런데 일이 없어서 놀고 있었는데 개그야를 같이 했던 감독님께서 당시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나는 가수다’에서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을 연습해 오라고 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원래 노래는 BMK가 더 비슷했지만, 이소라가 더 반응이 좋았다”며 “정말 성대모사를 못하다 보니 3일 동안 계속 프로그램을 돌려보면서 연습했고, 주변 반응이 좋아 감독님께 검사를 받아 합격점을 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성대모사를 못해 콤플렉스를 가졌던 김세아는 열정을 통해 이런 콤플렉스를 극복했다. ‘이소다’ 이후 김세아는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맛깔나게 모사하면서 오히려 이제는 성대모사 개인기를 갖춘 개그우먼으로 성장했다.

 

김세아는 “처음에는 자신 없는 분야를 하라고 하니 상당히 부끄럽고 수줍었다”며 “그래도 먹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연습했더니 극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 환하게 웃고 있는 김세아     ©박주환 기자

▲ 음악적 재능까지 꽃 피우다

 

뮤지컬에서 두각을 나타낸 김세아는 올해 앨범 발매까지 준비하고 있다. 그녀는 중학교 때부터 리듬 앤 블루스(R&B) 장르 음악에 빠져들었는데, 이들의 노래를 계속 듣고 따라 부르다 보니 어느새 노래를 잘 부르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세아는 “‘나도 가수다’를 통해서 음악적인 재능이 알려지게 됐다”며 “이게 터닝포인트가 되면서 행사 때에는 MC로 가서 음악무대까지 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많은 대중 앞에서 노래하는 게 너무 좋다.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나의 성량이나 기교를 보고 관중들이 박수와 함께 ‘앙코르’를 외치면 희열이 느껴진다”며 “정말 가수는 멋있는 직업 같다. 요즘은 개그하는 무대보다 노래하는 무대가 더 좋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직장인밴드 ‘말이화나’에서도 활약하고 있는 김세아는 5월 13일 홍대에서 공연이 계획돼 있다.

 

몇 가지 악기까지 다룰 줄 아는 그녀는 이번 공연에서 드러머로 활약할 예정이다.

 

김세아는 “나는 한 가지 해보고 싶은게 생기면 열정적으로 파고드는 성격”이라며 “드럼치는 교회 오빠를 보고 드럼이라는 악기가 너무 멋있다는 생각이 들어 직접 독학으로 드럼을 배웠다”고 밝혔다.

 

이렇게 독학으로 배운 드럼을 통해 이제는 직장인밴드에서 드러머로까지 활동하는 김세아. 이렇듯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아왔던 그녀는 사실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등 정신적인 질환에 시달리기도 했다.

 

▲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불안장애. 그리고 극복

 

김세아는 “사실 나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황장애와 불안장애로 인해 대인기피증까지 생겼었다”며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고 공동묘지 근처로 이사를 했는데, 집에서 지낼 수가 없어서 떠돌이 생활을 했다”고 고백했다.

 

이어 “안정된 삶을 살지 못하다 보니 주눅이 들어 초라한 삶을 살게 됐고, 자존감도 떨어졌었다”며 “하루하루 공포 속에서 살다 보니 이런 정신적인 고통에 시달렸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김세아가 이를 극복한 것은 신앙적인 힘이었다. 그녀는 “3일 동안 기도원에서 금식기도를 했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과학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당시 신앙의 힘으로 이겨냈고, 그래서 기독교 방송에 나가서 간증까지 했었다”며 “지금 생각해 보면 모두 나에게 필요했던 경험이었고, 이런 과정들을 통해 이기적이었던 지난날들을 반성하고 겸손함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김세아는 “따뜻한 말을 해주지 않던 엄마를 원망하기도 하면서 관계가 좋지 않았는데, 이런 과정 속에서 내가 사랑받는다는 걸 깨달았다”며 “그래서 요즘은 남들에게도 사랑을 베푸는 방법을 알게 돼 돈을 벌면 좋은 사람들과 밥 먹고 선물하는 게 너무 좋다는 것을 느꼈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래서 요즘은 마이너스의 삶을 살고 있다”며 크게 웃었다.

 

김세아에게 또 다른 안정감을 주는 존재는 최근 교제하고 있는 남자친구다.

 

그녀는 “최근 교제하는 남자친구가 있다”고 고백하면서, “두바이 사람인데, 엄마가 이 친구를 만난다고 하니 ‘네 인생은 코미디였다. 이 친구를 만나기 위해 알까리라 뉴스를 했던 것’이라고 말씀하시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교제하고 있는 남자친구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다는 김세아. 그녀는 “올해 아마도 결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김세아는 “남자친구와 서로 결혼하고 싶다는 의사를 확인했고,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받기로 돼 있다”며 쑥스럽게 웃었다.

 

올해 그녀는 개그프로그램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김세아는 “늦어도 9월 이전에 개그프로그램에 다시 복귀하려고 준비 중”이라며 “기회가 된다면 어느 곳이든 오디션을 볼 것”이라고 말했다.

 

후배들에게도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김세아는 “내 일을 즐기다 보면 기회는 언젠가 오게 될 것”이라며 “내 경험으로는 꼭 이슈가 되고 인기가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니다. 항상 기회가 올 때를 대비해서 일이 없을 때에도 망연자실 있지 말고 개그맨은 여러 가지 장르를 잘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것들을 배우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지향하고 있는 목표를 묻자 “항상 나오면 반갑고 안나오면 허전한 그런 사람이고 싶다”며 “뜨겁게 인기를 얻었다가 사라지는 그런 개그우먼이 아니라, 편안하고 은은한 캐릭터로 꾸준하게 사랑받으면서 어느 자리에서든 최선을 다하는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려 한다. 그게 나에게 행복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어느 자리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열정을 다해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김세아. 그녀의 열정과 유쾌함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길 진심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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