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
조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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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센 다리를 가진 수탉이 마당을 거닐고 있습니다 푸른 갑옷에 검은 수염이 자랑입니다 모가지가 탱탱한 놈이 부릅뜬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붉디붉은 벼슬은 제왕의 관을 닮았습니다만 언월도를 닮기도 했습니다 마당 가득 칼날 아래 피 뿜어내는 찬란한 빛입니다 누구 있어 내게 슬픔에 대해 묻는다면 그 혀를 잘라버리겠습니다
- 조길성 두 번째 시집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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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얼마 전 펴낸 조길성 시인이 두 번째 시집『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에 수록된 시다.
슬픔이란 무슨 색깔일까? 저마다 슬픔을 체감하는 온도는 주관적인 것이라서 각기 다를 수도 있다. 늠름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울안에 갇혀 달릴 수도 날 수도 없는 수탉!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그 꿈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은 당사자에겐 더할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 감히 슬프다는 말조차 삼킬 수밖에 없는 그 슬픔을 아는가? 철렁해지는 연민과 아픔이 쿵 가슴을 때린다.
현실과 꿈의 괴리감을 안고 삶이라는 멍에에 끌려 다녀야 하는 이 땅의 가장들과 일자리 하나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느 집 귀한 자녀들도 떠오른다. 그리고 이렇게만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팍팍한 현실에 힘겨워하는 오늘의 내 모습을 보는듯하기도 하다. 슬픔에 대해 도발적 일갈로 마무리한 이 시가 내내 한동안은 아픈 그림자가 되어 따라 다닐 것만 같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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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성 시인 /
1961년 경기도 과천 출생
2006년 계간 <창작21>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징검다리 건너』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