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탉

조길성

▲     © 최한나 기자

 

 

   억센 다리를 가진 수탉이 마당을 거닐고 있습니다 푸른 갑옷에 검은 수염이 자랑입니다 모가지가 탱탱한 놈이 부릅뜬 눈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립니다 붉디붉은 벼슬은 제왕의 관을 닮았습니다만 언월도를 닮기도 했습니다 마당 가득 칼날 아래 피 뿜어내는 찬란한 빛입니다 누구 있어 내게 슬픔에 대해 묻는다면 그 혀를 잘라버리겠습니다

 

              - 조길성 두 번째 시집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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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시는 얼마 전 펴낸 조길성 시인이 두 번째 시집『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에 수록된 시다.

  슬픔이란 무슨 색깔일까? 저마다 슬픔을 체감하는 온도는 주관적인 것이라서 각기 다를 수도 있다. 늠름하고 당당해 보이지만 울안에 갇혀 달릴 수도 날 수도 없는 수탉!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그 꿈을 펼칠 수 없다는 것은 당사자에겐 더할 수 없는 슬픔이라는 것. 감히 슬프다는 말조차 삼킬 수밖에 없는 그 슬픔을 아는가? 철렁해지는 연민과 아픔이 쿵 가슴을 때린다.

  현실과 꿈의 괴리감을 안고 삶이라는 멍에에 끌려 다녀야 하는 이 땅의 가장들과 일자리 하나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어느 집 귀한 자녀들도 떠오른다.  그리고 이렇게만 살고 싶지는 않았는데 팍팍한 현실에 힘겨워하는 오늘의 내 모습을 보는듯하기도 하다. 슬픔에 대해 도발적 일갈로 마무리한 이 시가 내내 한동안은 아픈 그림자가 되어 따라 다닐 것만 같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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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길성 시인 /

1961년 경기도 과천 출생

2006년 계간 <창작21>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 『징검다리 건너』 『나는 보리밭으로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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