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최한나 기자



 

겸상

조용숙

 

 

수원역 24시간 편의점에서

좀 이른 저녁을 먹는다

밥상 위에 차려진 저녁 메뉴는

컵라면 하나

나보다 조금 먼저 젓가락을 든

노숙자 옆에서 컵라면 포장을 뜯는다

단단히 뭉쳐진 면발을 나무젓가락으로

휘휘 저어대는 그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내 라면에도 뜨거운 물을 붓는다

뜨거운 물에 바로 풀어지는 면발 앞에서

그와 나 사이에 흐르는 냉기를

손바닥에 전해지는 컵의 온기로 녹여낸다

세상에 굽실거리기 싫어

거리에서 혼자 밥 먹는 날이 많았을 그와

아무 데나 함부로 고개 숙이기 싫어

세상 살아가는 일이 불편한 내가

먹으면서 서로 정이 든다는 가족처럼

어느새 많이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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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먹은 솜뭉치처럼 무거운 몸으로 놓친 끼니를 편의점에서 때워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시다.

생존의 동질감과 연민이 공감대로 얽혀진 이 시대의 이방인들... 편의점에서 약간의 거리를 두고 서서 먹는 남남끼리의 컵라면 하나지만 심정적으로는 겸상인지도 모른다.

왁자지껄한 어느 술집 한 귀퉁이에서 혼자서 잔을 기울여본 적 있는가? 저쪽 귀퉁이에서 나처럼 혼술하고 있는 사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좁혀주는 것은 무엇보다 음식이 아니던가! 혼자서 먹어야 하는 음식은 복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지만 홀로 수저를 들다가 떠오른 생각은 나처럼 혼자서 한 끼 때우는 사람들의 모습이 결코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쩌면 시대의 어떤 현상이 낳은 불가피한 그림 아니면 열심히 달리는 한 모습일수도 있다는 것! 아, 오늘도 우리 아들은 늦은 저녁 삼각 김밥 하나 사먹고 졸리운 귀로 강의를 듣고 있을까? 엄마는 기다림의 혼밥을 때운다.

이 시대의 진정한 겸상이 그리운 날이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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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숙 시인 / 

1971년 부여출생 

시집 『모서리를 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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