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교도관들의 이야기

[중앙뉴스=홍성완 기자] 영화 <집행자>는 2009년 11월 개봉작으로, 최진호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교도소에 근무하는 교도관들과 사형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사형제에 대한 찬반 논쟁이 최근에는 많이 줄었으나, 여전히 이에 대한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영화는 이런 논쟁 가운데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교도관들과 사형제에 찬성하는 입장과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는 모두에게 또 다른 질문과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아울러 양 쪽 모두의 주장 속에서 막상 현실을 마주하는 교도관들에 대한 인권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교도관들의 삶

 

영화는 고시원 생활 3년 동안 백수로 지내던 재경(윤계상 분)이 교도관으로 취직하면서 시작된다.

첫날부터 재소자들의 짓궂은 장난 속에 톡톡히 신고식을 치르는 재경은 10년 차 교도관 종호(조재현 분)의 냉정함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종호에게 재소자를 다루는 법을 하나씩 배워가는 재경은 사형수와 정겹게 장기를 두는 김교위(박인환 분)의 모습이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점점 교도관의 생활에 익숙해지는 재경은 교도관 뿐만 아니라 모범수들과 소통하며 보람 있는 시간들을 보내게 된다. 특히 칠순의 사형수 성환(김재건 분)은 재경을 위험에서 구해주기도 하는 등 모범적인 재소자의 모습을 보이면서 교도관들과 교감하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교도소에는 일대 파란이 일어난다.

 

연쇄살인범 장용두 사건을 계기로 여론이 들끓자 12년간 중지됐던 사형집행이 다시 시작된 것이다.

 

사형집행명령서가 전달되면서 교도관들은 일대 패닉 상태에 빠진다. 냉정함을 가진 종호는 법을 집행하는 것 뿐이라며 자발적으로 나서지만, 대부분의 교도관들은 사형집행조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갖은 핑계거리를 만든다.

 

그러는 사이 사형수 장용두는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살려진 장용두와 함께 칠순의 사형수이자 모범수인 성환 등에 대한 사형집행은 계획대로 진행된다.

 

사형수들은 사형집행 직전 제각각의 두려움에 두 발이 떨리기 시작하고, 마침내 사형집행이 이뤄진다. 사형을 집행하는 교도관들은 그들의 모습 속에서 괴로움에 떨고, 그들의 정신은 점점 무력해져간다.

 

▲ 재소자들과 마주하는 교도관들의 현실적인 모습

 

영화는 우리가 마주하지 못하는 재소자들을 눈앞에서 직접 바라보고 통제하는 교도관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그리고 감정에 치우쳐 미쳐 고민하지 않았던 또 다른 모습들을 보여준다.

 

재소자에 대한 우리의 불편함 감정에 가려진 교도관들의 삶을, 영화는 피폐해져 가는 정신 속에 그들만이 가지는 고통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특히 사형수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착한 성품을 나타내는 사형수 성환과 그에 대비되는 악질적인 연쇄 살인범 용두의 모습 속에서, 한 가지 잣대로 평가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영화 중간에 재경의 여자친구인 은주(차수연 분)가 임신을 하게 되면서 낙태에 대해 고민하는 재경에게 ‘살아 있는 생명을 어떻게 죽여 임마!’라며 호통 치는 종호의 대사는 영화를 보는 내내 머리 속을 맴돈다.

 

어쩌면 이 대사 한 마디가 이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라고 할 수 있다.

 

▲ 사형수에 가려져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

 

교도관들의 인권을 위해 최근에는 약물이나 전기, 가스 등을 이용해 사형을 집행하는 국가들도 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는 교도관들의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드물다.

 

전쟁터에서 살아남은 군인들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만큼 악질적인 사람이든, 내가 살아남기 위함이든 누군가를 살(殺)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견디기 어려운 행위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사형제를 논하기 전에 그 집행과정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냉정한 종호 조차도 결국은 정신적인 붕괴가 찾아오는 장면이 말미에 나온다. 이 장면을 보는 관객들은 아마도 그 처참함에 씁쓸한 기분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살인자들에게 인권 존중은 필요하지 않다는 사람들은 많다. 개인적으로도 그에 동감하는 바이나, 그것을 집행해야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또 한 번 혼란이 찾아오게 된다.

 

영화는 사형제를 찬성하는 것도,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형제도에 대해 또 다른 시각을 제시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번쯤은 이에 대해 고민해 보는 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일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영화 <집행자>는 모두에게 꼭 추천하고픈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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