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개념설계역량에 집중하지 않으면 안돼

이형근 기자

 한 달 전쯤 인천공항에 환송하러 간 일이 있다. 버스는 영종대교를 지나가는데 속으로 감탄했다. “이 다리를 우리건설회사가 지었단 말이지? 대한민국 대단하네”라고 감탄했지만 곧 실망했다. 영종대교의 설계가 일본인에 의해 이뤄졌단 사실을 알고나니 마음이 착잡(錯雜)했다. 

 

우리가 대단하다고 감탄한 구조물의 대부분은 기본 설계를 비롯한 핵심기술들이 해외 기업의 기술력으로 이뤄졌단 것은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산업 분야중에서도 특히 한국이 열세인 곳은 외국 기업의 놀이터 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는 “외국 기업들이 우리 약점을 잘 알고 있기에 비싼 값에 계약을 체결해도 문제 제기를 할 수가 없다고” 했다.

 

서울대 경제연구소는 2016년, 연구 발표를 통해 지난 20년간 우리나라 정권이 바뀔때마다 경제성장률은 1%씩 내려갔다는 통계치를 내놨다. 보수와 진보 등 모든 정권은 대통령이 바뀔때마다 ‘경제 살리기’를 외쳤고 그들 나름의 경제 전문가를 콘트롤 타워 최상위에 앉혀 경제정책을 집행했다. 그런데 경제 성장률이 뒷걸음 쳤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아무리 정책이 오락가락 했어도 정권 바뀔 때 마다 경제성장률이 하락했다고 지적한 경제 석학들의 연구발표에 허탈감 마저 든다. 

 

그렇다면 경제가 왜 뒷걸음 쳤는지, 또 세계경제를 쥐락펴락하는 G20멤버인 대한민국이 왜 아직도 제대로 된 다리 설계 하나 못하는 지 한 번쯤 반성하고 짚어봐야 한다. 

 

한국 기술력은 2차 세계대전이후 독립한 식민지 국가 중에 유일하게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국가 답게 세계 정상에 올라선 분야가 제법 있다. 생각나는 것만 짚어봐도 조선, 반도체, 휴대전화, 리튬이온배터리가 있다. 게다가 원전 수입국으로 이제는 자체 원자로를 설계해 해외에 수출도 하는 원전 수출국으로 우뚝 서기도 했다. 

 

이 정도면 외형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어쩌랴..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한 것을. 최근에 서울대 공대 교수들이 모여 ‘죽적의 시간’이란 책을 쓰고 이어 ‘축적의 길’을 출간했다. 이들이 이야기 하는 골자이자 핵심이 흥미롭다. 교수들은 ‘한국은 1단로켓을 분리 실패하고 2단 로켓점화가 안되는 상태’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설계도를 받아와 만들기는 잘해도 백지위에 설계도를 그리는 개념설계 분야에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개념설계 분야는 기술 획득까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축적되면 그만큼 부가가치를 보상받는다. 여기에서 한 가지 답이 나온다. 1단로켓 즉 실행능력과 이별하지 못했단 것이다. 

 

설계는 단순히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 부분마다 상세한 설계를 하게 되고 거기에 적절한 부품까지 지정한다. 자동차 한 대를 설계 한다면 거기에 맞는 부품을 일제히 지정한다. 그리고 제작사는 꼼짝없이 그 부품을 구매해야 한다. 설계는 제품 자체를 지배하는 주인이다. 저자들은 2단로켓 점화 실패 즉 기술획득의 실패를 지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조금씩 그 기술을 터득해 나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해방된지 70년만에 이 정도면 대단한 건데 왜 그걸 갖고 시비냐?”며 쓸데없는 걱정 한다고 오히려 비웃는다. 

 

비웃는 그들에게 왕서방들이 지금 놀라운 지혜와 치밀한 경제 전략으로 세계를 자신들의 발아래 두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엄청난 수준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실례로 구글에게 중국시장을 내줄 것만 같았던 중국 포털 바이두는 이제 현대자동차와 커넥티드카 개발 파트너로 성장했다. 

 

또 과거 중국 시골 전화국 조차 납품을 위해 영업사원들이 전화국 청소까지 해줬다는 화웨이는 어떤가? 결국 자존심 다 내려놓았던 화웨이는 결국 중국을 대표하는 종합통신사로 성장했다. 그들은 속칭 ‘맨땅에 헤딩’하기 식으로 달려들어 기술을 축적했다. 그 사이 우리는 제자리 걸음만 했다. 

 

기업은 ‘생산은 해외에서 하면 된다’고 생산시설을 해외로 일제히 이전했다. ‘설계는 우리가 하면 된다’고 자만에 빠졌다. 그 사이에 우리 경제는 많은 퇴행을 겪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온갖 막말과 기행으로 주목 받은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은 생산시설의 미국내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리고 압박수단으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재협상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의 기행과 막말에 묻혔지만 공약은 정확했다고 판단한다. 단순한 일자리 창출 차원을 넘어서서 해외 생산시설을 국내로 돌아오게 하는 리쇼어링 정책을 따리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인건비 절감 등을 이유로 들어 생산시설 이전에만 집착했다. 

 

이렇게 된다면 우리의 미래는 잘 되야 스페인이다. 스페인은 에어버스 설계에 참여할 정도로 우수한 기술력으 갖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도 제조업 기반이 허약해 경제위기에 휩싸였다. 

 

우리가 스페인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선진국의 제조설비 회귀를 위한 각종 정책을 참고해 일자리 창출부터 설계와 실행까지 한 번에 실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 지금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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