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시집 『거꾸로 서서 생각합니다』펴낸 송정섭 시인

▲     © 최한나 기자


 

빚 권하는 사회

송정섭

 

 

   누르세요. 전화번호를 누르세요. 외상이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거저 떨어집니다.

 

   바닥에 닿지 않고 튀어 오르는 공이 있던가요.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로데오에 들면 주저 말고 황소의 잔등에 올라타세요. 황소는 뒷발을 하늘 닿게 쳐올리고 무소불위 뿔을 구르며 내달립니다. 기쁨 가득 스릴 만점이지요.

 

   지레 떨어질까 겁먹지 마세요. 바닥으로 떨어져 도리 없는 뿔에 받히고 뒷발에 차이면 물건이 좀 깎인다 해도 남발한 미래가 돌려막는 날까지 바짝 고삐를 죄는 겁니다.

 

   뜨거우면 뒤집으세요. 석쇠에 든 눈과 눈, 콩과 팥을 잽싸게 뒤집으세요. 시뻘건 화상을 입기 전에 뒤집지 않으면 소까지 잡아먹은 외상값을 떼어먹어도 좋습니다.

 

              - 송정섭 첫시집 『거꾸로 서서 생각합니다』(푸른사상 刊)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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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첫 시집을 발간한 송정섭 시인의 시 한 편이다.

  옛날 그 옛날엔 돈 한 번 빌리기가 어려워서 중병에 걸려도 치료한 번 못받고 영영 눈을 감고 마는 사람들도 많았고 혹은 귀한 아들 등록금을 못 내서 통곡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돈을 거저 줄 것 같은 돈 장사들의 유혹에 쉽게 낚여서 그만 신용불량자가 되거나 거리에 나앉는 경우가 허다하지 않은가? 오늘날 신종 괴물이 되어 종횡무진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빚’이라는 달콤한 유혹을 시인은 역설적으로 풍자해 읽는 이로 하여금 서늘하거나 씁쓸한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요즘 크든 적든 빚을 지지 않고 사는 이 거의 없다. 불가피한 사정에 의한 안타까운 빚도 있지만 현금 대신 사용하는 신용카드가 빚의 주 원인인 것이다. 카드대금 납부일자는 왜 그리도 번개처럼 다가오는지... 우리는 빚에 무디어졌거나 중독이 된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발을 깊게 담글수록 헤어나기 어려운 수렁이 도처에서 전화기를 울린다. 빚 권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의 지혜가 절실히 요구되는 시절이다. 가벼워질수록 무뎌지고 무기력해지는 지갑들에게 울려주는 시인의 경종을 다시 한 번 음미해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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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섭 시인 /

1947년 전남 무안 출생

44세에 『호리병 속의 땅』으로 한국문학 소설 부문 신인상 수상

65세에 민중문학상 시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 시작

2017년 첫시집 『거꾸로 서서 생각합니다』(푸른사상 刊)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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