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뉴스=전대열 대기자]지난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 국민들에게 열정을 심어준 역사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88올림픽을 개최했던 나라에서 월드컵까지 유치한 것이다.

 

이제 1년 후에는 겨울올림픽까지 개최하게 되어 국민들의 가슴은 부풀어 올랐다. 세계유일의 분단국으로 가장 가난했던 한국이 이제는 어엿한 세계10대 경제대국에 끼었다.

 

원조 받던 나라가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뀐 유일한 국가라고 자부심도 갖는다. 일제강점기에는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벌이며 3.1만세혁명운동과 6.10만세운동 그리고 광주학생운동에 이르는 항일의 찬란한 역사는 광복 후에도 국민의 피를 끓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기에 이승만의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혁명이 가능했고 군사독재에 대항하여 5.18민주화운동이 있었으며 6월항쟁으로 직선제개헌을 쟁취해내기도 했다. 이러한 저력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취시키는 기본인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지난번 우리는 월드컵 예선전을 치르며 행여 이란과 우크라이나에 발목이 잡혀 본선진출이 좌절되는 것 아니냐 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다행히 모두 무승부로 끝나 행운의 여신은 한국 팀에게 미소를 보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 팀은 체제를 정비해가며 본선에서의 대활약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히딩크가 나타났다. 그는 네덜란드 출신으로 2002년 한국 팀을 맡아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한국축구의 은인이며 영웅이다. 그가 대표 팀을 맡으며 고질적인 학연 지연 그리고 인연(人緣)으로 맺어진 선수선발의 잘못된 원칙을 까부셨다. 그의 카리스마는 그 때까지 보아왔던 한국축구계의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놀라운 것이었다.

 

그가 새로 발탁한 박지성이나 이영표같은 선수들이 경기를 통하여 보여준 기량은 국민을 감동시키고도 남았다. 히딩크는 선수들의 체력보강을 제일의로 삼고 여기에 매달렸다. 전후반 90분을 전력 질주할 수 있는 선수들은 많지 않다.

 

청중이 보기에도 체력이 모자라는 선수들이 뛰지도 못하고 허우적대는 모습은 안타깝기만 했는데 히딩크의 기초체력 단련은 이를 훌륭히 커버했다. 그 결과는 “대~한~민~국”이라는 응원의 함성 속에서 우뚝 섰다. 월드컵4강. 공동개최였던 일본은 8강에나 들었던가? 붉은악마라는 곱지 않은 이름의 응원단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지르는 함성소리는 전 국민의 가슴을 뛰게 만들며 함박웃음을 선사했다. 모두 히딩크를 칭찬했다.

 

그 역시 축구인으로서 고국에서도 얻지 못한 영광을 한국에서 성취하며 세계 축구계의 거물로 등장했다. 연임을 바라는 한국축구계를 뒤로하며 영웅으로 떠난 그에게 한국국민들은 진정에서 우러나오는 박수를 보냈다. 심지어 거스 히딩크재단까지 창설되어 그와의 아름다운 인연은 계속되고 있다. 히딩크가 떠난 후 한국 축구는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다.

 

젊은 이광종감독은 심혈을 기우려 북한을 1대0으로 이기고 금메달을 땄으나 작년에 세상을 뜬 것은 수많은 축구인들이 진실로 애도하는 바다. 이 자리를 통하여 명복을 빈다. 윤덕여감독은 여자월드컵에서 4강을 쟁취했으며, 홍명보감독은 런던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하는 등 찬란한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그가 심어 놓았던 한국축구의 뿌리가 튼튼하게 자라고 있음을 증명하는 일이다. 15년 전 그가 처음 취임했을 때와는 전연 다른 모습으로 성장하고 변화했다. 많은 외국의 감독을 영입했었지만 커다란 성과를 거두지 물러났다.

 

이번 예선에서도 신태용감독이 취임하자마자 채 정비도 안 된 팀으로 무승부로 본선진출을 따낸 것은 기적이라고 일컫는다. 신태용은 선수생활 중에 가장 많은 골을 넣은 사람이다. 젊은 패기와 지략을 겸비했으며 선수들과 한 몸이 되어 뛸 수 있는 젊음이 있다.

 

그가 취임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나무에 올려놓고 흔들어댄단 말인가. 그것도 히딩크가 앞장섰다는 것은 얼른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다. 히딩크는 한국을 떠난 후 네덜란드대표 팀 등 수많은 유무명 팀을 조련했으나 한국에서와 같은 명성을 날리는 데는 실패했다.

 

그의 나이가 이제는 71세로 15년 전의 히딩크가 아니다. 체력으로는 물론 정신력에서도 과거와 다르다.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기에는 걸맞지 않는다. 게다가 모처럼 맞이한 젊은 신태용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 넣어줘야 할 대선배가 그 자리를 탐하는 것은 대인의 풍모와 거리가 멀다.

 

감독이든 기술고문이던 어떤 자리도 좋다는 그의 태도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한다는 모든 사안에서의 신선함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오만이다. 히딩크는 끝까지 한국축구의 영웅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그가 한국축구의 해결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축구인들이 환영하는 뜻을 보이는 이들이 없지 않은 것은 한국축구협회에 대한 일종의 시위로 보인다. 축구협회를 둘러싼 비리가 사법처리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는 작금의 사태가 히딩크로 하여금 발을 내밀게 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도 생긴다.

 

그만큼 축구협회는 오랜 세월 정몽준일가의 연속적인 장악으로 ‘현대축구협회’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었다. 나는 회장선출 방법부터 바꿔야 한다는 견해를 누차에 걸쳐 밝힌바 있지만 잠시 들은척한 후 도로아무타불이다. 잘못이 있는 정권이 국민의 힘으로 물러나듯이 비리가 무성한 협회도 책임지는 지도자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자리가 탐나도 물러날 수밖에 없다. 빨간 카드를 받았으니까. 그게 축구 룰이다.

 

전 대 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전대열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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