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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여자 용자언니

강란숙

 

 

노란차좁쌀 미음 끓여 한잠에 겨운 눈뜬

이생(離生)의 헐은 속 달래준

지철에미를 잊지 마라, 잊지 말고 다녀야한다, 신신당부한

어머니 말씀 되감질 해내는, 스물 하나 귀빠진 해

문턱에 벗어놓은 아버지신발짝 질질 끌고 다니는

다 큰 처녀 얘 작은 발목이 안쓰러워

노란망사슬리퍼 신발을 사준 용자언니

 

충남당진군청 식산과 양잠업계 다니며 키다리남자 흘겨본

정완 씨와 운명적 단칸방에서 깨져 뒹구는

사발시계 품어 앓은 맨가슴

새벽썰물은 당진서해바다 저녁밀물이 차오도록 풀어내는

석문면 삼화리 삼꽃 동네 어귀

 

고명딸 꿈처럼 부서진 충남당진군청 증 선명하게 쓰인

사발시계, 새로이

양잠업계 다니던 자부심을

사발시계초침에 맞추어, 열아홉 꿈 되돌려주고픈

친정아부지 거친 손으로 되돌려줄 수 없는

태밥을 감아주며

누에 뽕잎 먹는 소리 같은 초침소리에

깡마른 웃음을 지으신 왜목 갯벌 헐은 가슴이던

당진아부지 떠난 이승의 막잠 후

누에섶고치 짚 우화를 꿈꾸는 당진여자

용자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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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네 기억의 방은 몇 개일까? 어느 방엔 아이들의 동요가 살고 어떤 방문을 열면 애틋하고 아픈 그림이 살고 어떤 방에는 햇살들이 가득하고 또 하나의 방에는 감히 열어보기가 안타까운 아련한 이름들이 살기도 한다. 누구에게나 부를수록 그리워지고 뜨거운 이름 하나쯤 있을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분이 한 분 있다. 세월따라 흘러오다 보니 그 분의 연락처를 알 수 없어 더욱 그립고 미안한...

   여기, 한 시인이 그 이름에 바치는 시 한 편이 있다. 노란 망사슬리펴를 선물받은 스물한 살의 생일과 그 용자언니를 추억하는 화자에겐 오늘도, 아니 내일도 부르고픈 고마운 이름일 것이다. 용자 언니! 그 이름에 대한 축복의 마음을 찡하게 안아본다.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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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란숙 시인 /

경기 파주 출생

한국작가회의 고양작가 이사

시집 / 『잎새들이 잠드는 모습 보신 적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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