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 분배적· 시정적· 절차적 정의

 

▲ 김정겸 교수     © 중앙뉴스

[중앙뉴스=김정겸] 우리가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윤리이다. 사회 구조나 제도(법) 등은 사회 전체의 구성원을 다루기 위해 만들어 진 것이기 때문에 구성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윤리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정의(justice)는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윤리이다. 정의에 대한 타는 목마름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통해 정의에 대한 생각의 불씨를 주었다. 정의에 대한 갈증은 그 시대가 정의롭지 못했음을 반증해 주는 것이다.

 

공자의 도(道)를 인(仁)이 아닌 정의(正義)로 대치하여 보면 정의의 갈망을 쉽게 이해 할 수 있다. 공자는 “朝聞道, 夕死可矣(조문도, 석사가의).”라고 외쳤다. 이는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겠다.”는 뜻으로 道의 정립에 대한 열망이다. 얼마나 간절하면 아침에 도가 섰다는 소리만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할까?

 

정의가 사라진 시대에 정의에 대한 갈망으로 정의에 대한 담론들이 유행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정의는 탁월성(arete)문제와 관련 있다. 정의는 감정과 관계되는 탁월성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관계와 연관되는 탁월성이다. 완전한 탁월성은 법을 지키고 공정한 행위를 하는 것이다.

 

부정의는 법을 어기는 것과 남보다 좀 더 많은 것을 갖으려고 하는 데서 나타난다. 따라서 분배하는데 있어 공정해야 한다. 이것이 분배적 정의이다.
 
분배적 정의(distributive)는 조직 전체와 그 조직의 구성원과의 관계를 조화시키고 하는 정의이다. 즉, 조직 단체생활을 함에 있어 조직원 각 개인은 자기 나름의 서로 다른 능력과 가치를 가지고 있다.

분배적 정의는 이를 전제로 각각의 가치의 차이가 있음으로 그에 맞게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분배적 정의는 다르면 다른 방식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사람을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치적 차원에서 분배적 정의는 시민들 간의 명예와 부를 적절히 배분해야 한다.
 
시정적(是正的) 정의는 어떤 불공평하고 불공정한 일이 발생했을 때, 공평한 몫을 되찾을 수 있도록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정적 정의는 산술적 비례에 따른 동등함, 즉 숫자적으로 똑같이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가 B로부터 공평하지 못하게 이득을 취했다면, 시정적 정의(rectificatory)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람은 정의로운 상황으로 이끌고 가야한다. 즉 시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차적 정의(procedural justice)는 자원을 배분하는데 있어 의사결정 상황과 그 과정, 참여자 모집, 의견의 표출 등의 절차적 측면들에서 각 개인들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보장하자는 것이다.

분배하는 과정에서 즉, 절차적 정의 없이 분배적 정의는 이루어 질 수 없다. 절차적 정의가 공정할 때 분배적 정의 역시 공정하다.

 

우리는 우리가 얼마만큼을 분배받는지 와는 관계없이 여러 조건에 의해 배제당하고 멸시 당하고 있다. 이를 과정적 정의에 해당되는 절차적 정의를 통해 시정되어야 한다.

절차적으로 배제, 멸시 당한다고 지각될 경우 충분한 정도의 재화를 분배받았다고 하더라도 행복하지 못하게 된다. 


/김정겸/한국외국어 대학교 철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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