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 대한 월등한 이해가 경쟁의 룰이 되고 있지만 아직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서 고객이 소외된 채 개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고객을 중심 축으로 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을 나선형 개발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신제품 개발은 기업에게 중요한 투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기업에서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New Product Introduction: NPI)를 연구 개발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는 R&D 프로세스이기 보다는 비즈니스 프로세스(Business process)로 인식해야 한다.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가 비즈니스 프로세스라면 이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은 비즈니스의 성공이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무엇이 경쟁의 룰인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다.

경쟁의 역사를 살펴보면 최근 30년간 급격히 변했다. 1980년대 초·중반에는 제품 품질 향상 경쟁이 붙었다. 전사적 품질 경영(Total Quality Management)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품질 격차가 줄어 들면서 비용 절감으로 경쟁 대상이 바뀌었다. 즉 중국, 인도 등 개발 도상국으로 제조기지를 이전해 제조 원가를 낮추거나 공급망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하지만 비용마저도 비슷한 수준으로 절감할 수 있게 됐다. 그럼 이제 무엇이 남아있는가? 경쟁은 ‘고객에 대한 월등한 이해’로 옮겨갔다. 고객을 잘 이해하고 그들의 니즈를 얼마나 잘 충족시키느냐가 비즈니스 성공의 기준이다.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기업이 고객 중심의 경쟁 우위를 갖는 것과 동일한 의미가 되었다.

고객이 소외된 제품 개발

고객이 중요한 기준이라면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 내에 고객이 중요한 축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고객이 소외된 채 제품 개발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개발 팀은 어떤 제품을 만들어야 하는지에 관한 개념을 바탕으로 개발하지만, 고객의 실질적인 참여가 거의 없이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개발 과정 중 이미 너무 늦어 버린 시점에 이를 때까지 고객과 제품을 검증하려는 시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 즉, 고객이 개발 과정에서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 것이다. ‘도요타 제품개발의 비밀’의 저자인 제임스 모건(James Morgan)과 제프리 레이커(Jeffrey Liker)교수가 책에서 밝힌 노스 아메리칸 카의 사례는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노스 아메리칸 카의 경우 초기에 고객 입장에서 중요한 제품 특성이 무엇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인구통계학 데이터를 분석하거나 소비자 그룹을 통해 얻은 결과를 분석한다. 그러나 제품 개발팀은 결과 분석에 있어 고객에게 주는 가치에 대해서는 등한시하고 오로지 재무적 목표를 달성하는 것에만 매달려 있다고 한다. 두 저자가 개발팀을 인터뷰한 결과, 제품 개발 프로세스에서 간부들에게 승인을 받는 단계에 접어들면 어떻게 계획안을 통과시킬 것인가만 머릿속에 가득한 듯 보인다고 한다. 물론 승인을 받는 단계도 매우 중요하지만, 이래서는 고객과 공감하거나 새로운 차에 대한 기대감을 공유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다시 말해, 이 개발 프로세스의 주인공이 고객이 아닌 경영수치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프로세스에는 제품 컨셉 단계 이후, 제품이 출시 되기까지 고객과 관련된 내용이 개발에 등장하지 않는다. 제품개발팀 책임자는 투자수익률에만 주목하고 있을 뿐 고객과 소원해져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가치에 대해서는 간과함으로써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고객에게 어떤 새로운 가치를 줄 것인가 보다는 비용, 납기, 예상 매출 등 기업 관점의 수
치들을 중심으로 개발 프로세스가 진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개발을 진행하면서 고객 관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개발 초기에 제품이 향후 시장에서 고객에게 어떻게 평가 받을 지에 대한 조감도가 반드시 정립되어야 한다.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 for customer)을 할 것이며 경쟁사 대비해서는 어떤 가치가 우월할지에 대한 조감도가 정립되어 있어야 전체 개발이 진행되는 동안 고객 관점을 놓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 그래야만 개발에 참여하는 대규모의 인원들이 자신이 전체 그림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명확히 인지할 수 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개발 참여자들은 각 단계에서 고객과는 소외된 채 본인이 해야 하는 업무만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이럴 경우 시장 출시 후 고객 니즈와는 동떨어진 제품이 나올 위험성도 높아진다. 고객은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의 필수적인 부분이 되어야 한다.

고객이 중심이 되는 제품 개발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기업이 무슨 비즈니스를 할 것인지, 무엇을 생산할지 그리고 그것이 번영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사람은 고객이라고 하였다. 즉, 모든 것을 고객의 시점에서 바라볼 때 비로소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는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서 고객을 중심에 놓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살펴보자.

● 나선형 개발(Spiral Development)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에 있어 전 세계 기업의 70% 이상이 사용하고 있는 스테이지 게이트 모델(Stage-Gate model)의 창시자인 쿠퍼 박사(Robert G. Cooper)는 전세계 500여 개 기업의 2,000여 신제품 프로젝트를 대상으로 한 실증 연구를 통해 수익성 있고 신속한 제품 개발을 가져오는 몇 가지 원칙을 밝혀냈다. 그 중 하나가 나선형 개발이다. 나선형 개발이란 제품 프로토타입(Prototype)을 고객에게 선보이고 피드백과 검증을 얻어 그 다음 프로토타입에 반영하는 과정을 연속적으로 반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루프는 ‘제작-테스트-피드백-개선’이라는 일련의 작업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들의 모습에서 ‘나선형 개발’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기업의 신제품 개발 프로세스는 선형(Linear)적인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개발 초기에는 고객들을 방문하고 가능한 한 최대로 고객들의 요구 사항을 수집한다. 사전 조사 작업이 정확히 이루어지면 제품 사양이 결정된다. 여기까지는 나선형 개발의 초기 단계와 유사하다. 그러나 그 이후 단계부터는 경직된 선형적인 프로세스를 거친다.

개발팀은 변화하는 유동적인 정보를 접하기 보다는 초기의 고객 정보에 천착하여 개발을 진행한다. 이런 프로세스로 개발이 막바지에 다다르면 거의 완성품에 가까운 제품이 나오고 그제서야 고객 테스트를 받으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이 단계에 오면 무엇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타깃 고객에게 그때까지 개발된 제품을 선보이면 그들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제품이 다른데요” 혹은 “그 동안 변경된 사항이 있습니다” 라는 반응을 보인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요점은 개발 기간 동안 변화된 유동적인 정보에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초기에 수집한 정보만을 기반으로 개발을 진행해왔기 때문에 변화를 수용하지 못한 것이다. 개발 기간 동안 제품을 둘러싼 환경은 변한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