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자가전 브랜드들은 최근 수년 새 내수시장에서 놀랄 만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글로벌 브랜드를 압박해 왔다. 백색가전은 물론, 오랫동안 글로벌 브랜드가 장악해온 대형 LCD TV시장에서도 욱일승천하는 기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재무제표로 살펴본 그들의 ‘속내’는 성장세만큼 뚜렷한 인상을 남기진 못하고 있다. 한국 전자기업들보다는 수익성이 높지만, 자본구조는 외부자본 의존도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 장기성장을 담보할 고정(유형)자산 증가세도 미진한 편이다.

뛰어난 원가경쟁력에도 불구하고 글로벌시장 진출도 답보상태를 보인다. 내수시장을 쥐락펴락하는 대형 로컬브랜드조차 글로벌 공급사슬이나 마케팅 역량, 브랜드 파워에서 아직 글로벌 전자업체들과는 상당한 격차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국외 글로벌 저가업체들의 공세도 만만찮다.

그러나 내수시장에서의 로컬기업간 구조조정이 일단락되고, 제품별로 전업 브랜드들의 득세 및 대형화가 계속 진전된다면 이들의 규모 경쟁력은 한층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글로벌 전자기업들은 몇몇 부품분야의 기술우위를 바탕으로 로컬 업체와의 협력모델을 만드는 것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다.

글로벌 전자기업들의 중국 시장 진출은 1970년대 후반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마쓰시타 전기 창업자(1894~1989)의 베이징 방문이 물꼬를 텄다. 과학기술 입국에 사활을 걸었던 덩샤오핑(鄧小平)이 도쿄를 찾아 당시나 지금이나 상용화 기술에서 최고 수준에 올라있는 일본 전자기업들의 중국 진출을 강력히 희망했고, 일중경제협회 회장을 맡았던 마쓰시타 회장이 이에 화답하는 차원에서 쇼우두(首都) 공항 근처에 TV 공장을 지은 것이 전자 분야 외자개방의 상징처럼 되었다.

마쓰시타에 이어 1990년대 중국 연해지역에 본격적으로 생산거점을 세우기 시작한 글로벌 전자기업들이 로컬 전자기업들의 경쟁력을 한 수 아래로 치부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제조공정에서부터 마케팅, 연구개발 등 중국 내수 판매를 제외한 거의 모든 비즈니스 사이클에서 중국 로컬기업들은 글로벌기업들을 따라 하기 바빴다. 혈연이나 지역 연고가 있는 대만기업은 물론, 일본과 한국 글로벌 전자기업들의 중국 시장 착근(着根)은 매우 순조로웠다. 생산법인들은 2,3년 내 손익분기점을 달성했고, 주요 가전제품의 시장점유율 순에서도 상위권에 가볍게 포진했다.

중국 로컬 소비자가전 기업들의 제조 역량이 쌓이면서 그들은 핵심부품의 중국 내 조달이 비교적 용이하고, 노동집약적 공정이 전체 부가가치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제품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스피커 같은 단순한 음향기기, 전자레인지, 각종 A/V 플레이어 등이 그것들이다. 2000년대 들어 글로벌기업들이 원가 경쟁력에서 밀리면서 이 시장을 떠나기 시작하자, 곧 가정용 에어컨 시장마저 로컬기업의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글로벌기업 중엔 내수 영업을 거의 포기하고, 글로벌 브랜드 영업에 만족하는 사례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세탁기 냉장고 등 고가 백색가전 시장으로 점차 확산되는 양상이다.

최근 목도되는 가장 극적인 변화는 LCD-TV 시장에서 나타나고 있다. LCD-TV 제조원가의 90% 가까이 차지하는 LCD 패널은 한국 대만 일본의 글로벌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 내수시장엔 이들과 지분관계나 전략적 협력관계로 얽힌 대형 글로벌 조립업체들이 대부분 진출해 오랫동안 터를 닦아왔다. 그러나 지난 해 LCD TV 시장을 휩쓴 것은 Skyworth(創維), Hisense(海信) 등 로컬 브랜드였다. 스카이워스는 불과 4년 전만 해도 9, 10위권을 전전했던 TV 전문업체이다. 특히 로컬 TV 브랜드 중 전통적으로 강자로 인정받았던 창홍(長虹)이나 백색가전 시장에서 부동의 1위로 군림하고 있는 하이얼(Haier), 프랑스 전자기업 톰슨 인수로 웅대한 비전을 꿈꿨던 TCL 등이 이 분야에서만큼은 덩치가 작았던 브랜드에 맥을 못 추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향후 소비자가전시장 성장세를 이끄는 분야가 TV일 것이라는 점에서 LCD TV시장의 지각변동은 향후 가전산업 전체의 판도를 바꿀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글로벌기업들은 중국 로컬기업들의 성장세에 치이면서도, 다른 한 편으론 그 의미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자체 실력으로 성장했다기보다 국유기업인 만큼 정부의 비호와, 금융부문의 음성적 지원, 현지 언론의 ‘토종 감싸기’ 등에 힘입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로컬 전자기업들은 사실 해당 지방정부로선 결코 몰락을 수수방관할 수 없는 대형 고용기업들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지적은 일견 타당성이 있다. 실제로 지방정부의 고위 간부가 퇴직 후 로컬기업의 경영진으로 옮겨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적 후광’의 상당 부분은 일본이나 한국의 글로벌 브랜드들도 성장기에 경험했던 것들이다. 일본 한국정부는 아예 유치산업 보호를 명문으로 전자시장의 빗장을 걸어뒀던 반면, 그나마 후발주자인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의 대전제 속에서 자국기업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보호의 강도가 덜하면 덜했지, 더하진 않을 것이다. 금융부문의 지원이나, 로컬 언론의 자국기업 편들기 관행은 지금 한국 내수시장에서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중국 로컬 소비자가전 기업들의 몸집이 글로벌 브랜드들의 중국 내수실적을 웃도는 지금 이 같은 폄훼는 눈앞에 닥친 위기를 간과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비록 글로벌 브랜드를 모방하면서(Fast Follower Strategy) 단기간 몸집을 키웠지만, 재무적 지표 등 면에선 향후 고도성장을 이어갈 탄탄한 잠재력을 갖춘 기업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현재 시장에서 존재감을 과시하는 로컬 소비자가전 브랜드들은 중국 내 170여 개 전자 브랜드와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살아남은 것들이다. 이중 몇 개의 대형 브랜드는 글로벌 브랜드와의 내수경쟁은 물론 글로벌시장 경쟁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본 고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 기초해 로컬 소비자가전 기업들의 재무적 성과를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의 강약점을 더욱 분명하게 파악하고자 한다.

중국 소비자가전 기업들의 지나온 성장세는 눈부시다.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중국 정부가 내수경기를 진작시키는 과정에서 가전하향(家電下鄕) 이구환신(以舊換新) 등 가전 판매 지원 프로그램의 혜택을 톡톡히 받았다. 매출증가율이 2008년 13%에서 2010년도 결산기에 45%로 치솟은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15개 제조기업 중 허페이산요나 하이얼 전기 등은 업계 평균 신장률보다 훨씬 높은 60%대 성장률을 보였는데, 이는 두 회사 모두 가전하향의 집중 수혜품목인 세탁기의 매출비중이 높았던 것과 무관치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수익성 및 자산구조의 적정성에선 다소 우려가 따른다. 전자기업들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지난해 20%를 넘어섰지만 매출액영업이익률이나 총자산이익률(ROA) 등은 각각 3%, 6%대에 머물렀다. 한국 전자기업들보단 매우 양호한 실적이지만, 과다한 외부 차입으로 사업을 꾸리고 있다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부채비율과 유동비율을 살펴보면, 한국 전자기업 평균치보다 두 배 가까이 열악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다만 한국 전자기업들도 과거 고도성장기엔 300% 안팎의 높은 부채비율을 유지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자본시장의 미발달로 인해 직접 자금시장에서의 자금조달이 여의치 않은 반면, 해외시장의 확장으로 대규모 설비투자 자금수요가 끊임없이 제기되던 시절이었다. 중국 전자기업들도 주식 및 채권시장에 대한 금융당국의 규제와, 이와 대조적인 금융기관 차입의 용이성을 감안할 때 외부자본 활용도를 높이는 쪽으로 자금원을 개척해왔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중국 전자산업과 같이 역동성이 큰 시장에서는 자본부채 구조의 적정성보다 영업 현금흐름으로 이자비용을 조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더 큰 의미를 지닌다. 일반적으로 이자지불액의 3배 이상 되는 EBIT을 벌어들일 경우 재무건전성에 커다란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대형 중국 전자기업들은 3배를 넘고 있다. 종합하면, 중국 전자 제조기업들은 상당히 높은 부채비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영업활동을 통해 충분히 이자를 갚을 만큼의 현금을 벌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다만 대형 통신설비 업체인 다탕(大唐)전신의 경우 부채비율이 지난 해 600%를 넘은 데다, 이자보상비율도 3배에 근접한 채 오르내리고 있다.

중국 전자기업들이 한국 전자기업들의 성장방식을 따른다면, 외부차입을 통해 마련한 자금을 미래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한 설비투자 등에 집중시켰을 것이다. 따라서 총자산에서 차지하는 유형자산의 비중은 해가 지날수록 완만하게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번 분석에서 이 같은 기대는 들어맞지 않았다. 중국 전자기업들의 유형자산 비중은 한국의 그것보다도 크게 낮을 뿐만 아니라 2009년 들어 두드러지게 감소세마저 보여주고 있다. 유형자산 규모 자체가 3, 4년에 한차례씩 감소하는, 과거 한국 전자기업의 성장기에선 볼 수 없었던 ‘기현상’도 나타난다.

이 같은 한중 전자기업 간 유형자산 비율의 차이는 한국 전자기업들이 중국 기업들과 달리 글로벌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거나 부품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에 나선 사례가 많은 것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반면 중국 전자기업들은 기술역량의 격차나 극심한 내수경쟁 등으로 핵심 부품의 내부화(內部化)에 진전을 보지 못했고, 그 결과 높은 부채비율에도 불구하고 차입금의 상당부분이 경상 영업활동에 투입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한국 기업들이 자본집약적인 반면 중국 기업들은 노동집약적인 특성이 강한 것이다.

경쟁이 치열한 만큼 절대강자가 없는 곳이 중국 소비자가전시장이다. 치열한 경쟁은 특정 기업의 간판 비즈니스도 몇 년 새 바꿔놓기 일쑤이다.

11개 본토 상장기업의 주력 사업품목과 매출비중을 2003년, 2006년, 2010년에 걸쳐 나눠 정리해보면 가장 먼저 두드러진 특징은 에어컨 시장의 구조조정, 즉 전업(專業)기업으로의 재편 현상이다. 2003년 에어컨 사업을 3대 수익원의 하나로 연례보고서에 기재했던 기업이 창홍, 칭다오 하이얼, 메이링, 메이디, 거리, 샤오텐어 등 7개사나 됐다. 그러나 지난해엔 거리 메이디 메이링 칭다오하이얼 등 4개사로 압축됐다. 이중 거리와 메이디는 에어컨 매출비중이 각각 91%, 65%에 이르는 사실상의 에어컨 전업기업들이다. 에어컨이 중국 내수시장에서 ‘블루 오션(Blue Ocean)’으로 변질되면서 대규모의 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전업기업으로 시장이 재편돼가는 것으로 일단 해석할 수 있다. 실제 시장조사기관 Gfk 등이 집계하는 에어컨시장 매출 현황을 보면, 해마다 거리 메이디 등 양사가 시장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으며 글로벌 브랜드 등 기타 브랜드 위축이 분명해지고 있다.

전업기업의 강세는 세탁기시장에서도 목도된다. 세탁기 매출비중이 높은 샤오텐어와 산요의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진 것이다. 두 기업은 세탁기 시장 상위 8개 브랜드의 연합 매출에서 차지하는 개별 비중이 2007년 각각 11%, 5%였으나 지난해엔 13%, 9%로 상승했다. 세탁기 시장에서는 두 기업과 품질 하나로 드럼세탁기 외길을 걷고 있는 지멘스를 제외하면, 전 브랜드가 시장점유율의 정체 혹은 감소를 겪었다. 마찬가지로 TV 분야에서도 사실상의 전업기업인 하이신과 캉쟈, 스카이워스의 상승세가 특징적이다.

이 같은 흐름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전업기업이 다각화보다 나은 게 아니냐’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이 같은 판단에 앞서 수년 전 중국 전자업계에 휘몰아쳤던 구조조정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2000년대 중 후반 중국 가전업계는 인수합병을 통한 사업다각화 및 몸집 키우기가 키워드였다. 최대 기업인 하이얼의 다변화된 사업 포트폴리오가 강점으로 비춰지던 시절이었다.

에어컨 업체인 메이디가 인수합병을 통해 세탁기 냉장고 시장에 진출했고 하이신 역시 커롱을 인수해(2006) 냉장고시장에 도전장을 냈다. 창홍도 메이링 등을 인수해(2007) TV 일색이던 사업구조를 냉장고 에어컨 등으로 다변화시켰다. 전업 브랜드가 다른 가전분야 전업 브랜드를 인수함으로써 본업 외 시장진출의 리스크를 줄이면서 그룹 전체적으로 다각화를 꾀하는 방식이다. 이를 감안할 때 최근 수년 새 나타난 전업기업 시장지위 향상은 규모의 경쟁력 제고에 따른 자연스런 결과일 수 있고, 혹은 지분으로 얽힌 다른 브랜드와의 ‘교통정리’의 소산일 수도 있다. 배경이야 어떻든 중국 전자시장은 여러 전업 브랜드를 거느린 소수의 로컬 가전업체의 지배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글로벌 전자기업으로선 한층 강력한 경쟁상대를 맞이하게 된다는 얘기이다.

해가 갈수록 내수시장 내 위상을 높여온 로컬 전자업체들에게도 고민이 엿보인다. 첫째가 글로벌 시장에서의 존재감이다. 내수시장에서의 가격경쟁이 치열해질수록 해외시장으로의 탈출을 꿈꾸게 마련이다. 강력한 원가경쟁력을 갖춘 중국 전자기업들의 세계시장 제패는 시간문제로 여기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지만 이것 역시 결코 녹록하지 않은 과제임을 보여준다. 10여 개 전자기업들의 내수매출 비중은 내려가긴커녕 전반적으로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글로벌 전자시장이 얼어붙었던 2009년엔 내수비중 상승세가 특히 두드러졌다. 더욱이 중국 소비자가전업체 중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하이얼(칭다오 하이얼)의 내수비중이 89%(2010년)로 가장 높았다. 기대 밖의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한가지 풀이는 앞서 지적했던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설비투자와 관련이 있다. 핵심부품의 외부 의존도가 높은 LCD TV를 보자. 이 부품의 생산을 내재화한 글로벌 전자업체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브랜드 파워와 유통 경쟁력으로 맞서고 있다. 대만의 VIZIO와 같은 저가형 세트업체와 제휴함으로써 중국 로컬 전자기업들의 강점인 판가경쟁력을 앞지르기도 한다.

백색가전의 경우 부품시장이 오픈 마켓화돼 중국 외 저가형 세트 업체들이 손쉽게 대량 생산을 통해 경쟁업체로 부상할 수 있다. 백색가전 시장은 특히 선진국에선 이미 성숙기에 진입했거나, 프리미엄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다. 원가경쟁력 만으로 버티기엔 글로벌 생산연계(SCM)체제나 마케팅 역량에서 아직 글로벌업체와 격차가 적지 않은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중국 경제의 구조전환은 적어도 2020년까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중국경제가 내수 잠재력을 현실화해 가는 과정은 수출경쟁력 면에선 임금상승이나 위안화 절상과 같은 판매가격 상승세로 귀결된다. 중국 로컬 전자기업들의 가격경쟁력은 구조개선과 동시에 도전을 받을 것이다. 해외매출 비중을 늘리지 못하는 로컬 전자업체들의 한계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고민은 전자 유통기업과의 ‘갈등’이다. 글로벌기업의 내수시장 진출 초창기 태동했던 수닝(蘇寧)전기와 궈메이(國美)전기는 ‘신유통(전자 전문유통)’에 대한 제조기업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급성장하더니, 급기야 2000년대 중반 몇 차례의 경쟁업체 인수합병을 통해 공룡 기업으로 변신했다. 지난해 전자 제조부문과 유통부문의 경영성과를 비교한 것을 보면, 매출액 증가율(3개년 연평균 증가율)을 제외하곤 대부분 항목에서 유통부문이 우세했다. 그림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 매출액 영업이익률 지표이다. 최종 소비자 판가에서 나오는 판매이익을 전자 제조부문과 유통부문이 나눠가지는 특성 때문인데, 2007년 이후 유통부문의 매출이익률이 제조부문보다 매년 1,2% 포인트씩 높게 형성됐다. 이는 유통부문이 우월한 협상지위를 무기로 재고부담이나 각종 명목의 판촉비용을 제조기업에 부분적으로 전가시키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로컬 전자업체들은 이 같은 유통부문과의 갈등구조를 회피하기 위해 자체 유통을 설립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으나, 유통부문의 시장확장세가 더욱 빠르다 보니 중소도시 및 농촌시장 등지에서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 그 결과 재주는 제조업체가 넘고, 이윤은 유통부문이 챙겨가는 한계를 넘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협상력이 로컬기업에도 뒤지는 글로벌 전자기업들은 유통부문과의 갈등으로 곤경에 처할 때가 매우 많다. 유통부문의 지나친 비대화와 수탈적 수익구조는 제조부문의 장기 성장기반을 잠식하게 마련이다. 부품내재화를 위한 연구개발, 해외마케팅 역량을 뒷받침하는 브랜드 파워 등은 상당기간 경영자원을 투입해야 키울 수 있는 장기 프로젝트들이기 때문이다.

중국 로컬 소비자가전 기업들의 재무성과를 총평하자면, 성장세는 무섭지만 장기 성장기반 구축에는 다소 소홀했다고 볼 수 있다. 치열한 내수경쟁과 유통부문에의 출혈구조가 배경이 됐을 것이다. 글로벌 전자기업들로선 중국 내수경쟁에선 밀리면서도 글로벌 경쟁을 자신할 수 있는 근거가 여기서 나온다. 그러나 이 같은 흐름이 향후에도 그대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

우선 이전투구를 거듭해온 소비자 가전분야의 구조조정이 몇 개 대형 로컬기업 중심으로 정착돼가고 있다. 4대 가전품목에서 내수판매액 1~10위 순위에 오른 로컬브랜드들의 판매액을 합산해 비교한 것을 보면, 하이얼 브랜드의 정체와 하이신, 스카이워스 거리 메이디 등 LCD TV와 에어컨 전업 브랜드들의 약진이 한눈에 들어온다. 세탁기로 유명한 샤오텐어가 메이디에 인수됐고 TCL 창홍 등 전통 강자들의 성장세가 평균 이하라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주목할 만한 로컬 소비자가전 기업은 하이얼 스카이워스 하이신 거리 메이디 등 5개 업체로 압축된다. 이중 가장 사업구조가 다변화된 하이얼그룹은 2개의 상장 자회사가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사업을 나눠서 나름 성과를 내고 있지만, TV나 휴대폰 등 사업에선 존재감이 미약하다. 하이얼그룹이 이러한 추세를 반전시키지 못한다면 로컬 5대 브랜드는 제품별로 특화된 브랜드로 굳어질 가능성마저 있다.

5개 업체가 안정적으로 내수시장을 분할해가고 제품 영역을 나눠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된다면, 다음 시장타깃은 당연히 글로벌 시장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소비자가전 시장은 제품의 특성 상 부동산경기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데, 최근의 정부 경기대책은 상당기간 부동산경기를 진정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더욱이 2000년대 들어 소비자가전 시장 성장세를 이끌어온 대도시 시장은 적어도 범용품 분야에서는 거의 포화상태를 보이고 있다. 대체수요 및 업그레이드 수요만으로는 과거와 같은 성장세를 보이기 어렵다. 로컬업체들의 세계시장 진출 확대는 건강한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한 자구책이다.

중국 정부가 지속적으로 펼치고 있는 자주창신(自主創新) 전략도 눈여겨봐야 한다. 올 전인대를 통과한 12차 5개년 계획은 산업정책으로서 ‘7대 전략적 신흥산업 육성’을 천명하고 있는데, 여기에 차세대 정보기술산업이 포함됐다. 대면적 LCD나 OLED 반도체 S/W 등 핵심 부품 및 서비스의 국산화가 목표로 자리잡은 것이다. 이 분야의 경쟁력 확보는 바로 하류 부문인 소비자가전 분야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장기적으로 중국 소비자가전 시장에서 로컬 세트 업체들의 경쟁력을 넘어서긴 쉽지 않다. 생산원가, 현지 마케팅역량, 유통부문과의 협조 등 모든 면에서 글로벌 전자업체들은 더욱 어려운 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다. 다만 일부 핵심부품 등에서 로컬업체를 넘어서는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이를 지렛대로 로컬업체와 협력관계를 강화함으로써 일정한 시장영역을 유지하는 상생형 사업모델을 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LG경제연구원 박래정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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