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방송법 개정의 이유와 방향

방송법 개정을 논의하다 보면 단골메뉴처럼 반론으로 제기되는 문제가 있다. 첫째는 경제가 어려운데 논란이 많은 방송법을 왜 지금 개정하여야 하는가라는 질문이다. 둘째는 신문사와 대기업에게 왜 특혜를 주려고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는 방송법 개정으로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하겠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방송규제’의 정당성을 다시 물어야

이러한 질문은 현재의 방송규제가 정당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개정하기 위해서는 개정 이유가 분명하여야 한다는 전제에 바탕하고 있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 하면 위 질문은 모두 의미가 없어진다. 그 관점이란, 규제는 원칙이 아니고 예외라는 것이다. 즉 규제를 정당하다고 볼 것인가, 규제는 불가피한 것이라고 볼 것인가가 방송법 개정 논란의 핵심이다.

한나라당이 발의한 법안은 규제하여야 할 때만 규제하자는 관점에 서 있다. 반면에 방송법 개정에 반대하는 관점은 방송에 대한 규제는 언제나 정당하고, 이를 완화 내지 철폐하려면 그 이유를 충분히 납득시키라는 것이다.

이처럼 대립되는 견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가치질서를 담고 있는 최고 규범인 헌법에 기초하여 검토할 수밖에 없다. 또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사회 현상을 바탕으로 개정안의 타당성을 논의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의 다섯 가지는 적어도 우리 헌법의 해석에 합치하고,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에 대한 공감대가 아닐까 한다.

첫째, 신문사와 대기업의 방송진출 여부의 결정은 입법자의 재량이다.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입법자는 “광범위한 입법형성재량을 갖고 방송체제의 선택을 비롯하여, 방송의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직적, 절차적 규율과 방송운영주체의 지위에 관하여 실체적인 규율을 행할 수 있다” (2002헌바49).


입법자는 자유롭게 방송법 개정할 수 있어

혹자는 헌법재판소가 신문법 사건(2005헌마165)에서 “일간신문과 지상파 방송 간의 겸영금지가 언론의 다양성 보장과 아무런 실질적 연관성이 없다는 것이 명백할 정도로 미디어 매체나 정보매체 환경에 획기적인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합헌이라고 판정하였으므로 방송법을 개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는 권력분립의 원칙과 민주주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다. 위 헌재 결정은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헌법재판소가 위헌을 선언할 수 없다는 의미이지, 획기적인 변화가 없는 한 입법자가 법을 개정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입법자는 자유로이 방송법을 개정할 수 있다.

둘째, 입법자의 입법형성재량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원리로 하는 헌법의 요청”을 수용하여야 하는 한계가 있다. 언론의 다양성 보장은 자유민주주의의 불가결의 전제이므로, 입법자는 국민이 방송을 통하여 다양한 의견에 접하고 이를 바탕으로 자유로이 의사를 형성할 수 있도록 입법하여야 한다. 의견 다양성의 확보는 방송법 개정의 한계다.

셋째, 매체의 특성을 고려하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신문은 자유로이 발행할 수 있으므로, “사경제적ㆍ사법적 조직과 존립의 보장 및 그 논조와 경향, 정치적 색채 또는 세계관에 있어 국가권력의 간섭과 검열을 받지 않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신문”을 제도적으로 보장받는다(2005헌마165). 하지만 방송은 주파수의 제한이라는 기술적 한계로 소수가 독과점을 형성하는 구조적 특징이 있다.


방송은 기술적 특성상 소수가 독과점 형성 가능

매체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의견 다양성 정책의 중심은 방송이여야 한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송매체는 음성과 영상을 통하여 동시에 직접적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강한 호소력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중조작이 가능하며, 방송매체에 대한 사회적 의존성이 증가하여 방송이 사회적으로 강한 추세이므로 이러한 방송매체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방송의 기능을 보장하기 위한 규율의 필요성은 신문 등 인쇄매체보다 높”기 때문이다(2002헌바49).

넷째,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으로 미디어 환경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케이블 TV의 등장,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인터넷의 보편화, 방송과 통신의 융합 등으로 사람들은 자기 의사형성에 필요한 정보를 다양한 곳에서 얻고 있다. 현재의 방송법 체계는 멀리 보면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제정된 언론기본법에 기초하고 있다.

가까이 보더라도 1987년 방송법 제정에 기초하고 있다. 그 때의 매체 환경은 지금과 크게 다르다. 그 때는 케이블 방송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다. 과거 여론 지배력이 크다는 이유로 규제 받아왔던 내용을 재검토하는 것은 언제나 정당한 것이다. 이미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많은 선진국들이 미디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소유규제를 재검토하였다.

다섯째, 방송도 산업이며, 산업에 대한 국가 개입은 보충적이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며(헌법 제119조 제1항), 국가는 사경제 주체가 자율적 판단에 따라 활동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시장지배력의 남용 등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하여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의견의 다양성 보장하면서 민간의 자율성 존중해야

이상의 논의를 정리하면, 방송법은 의견의 다양성을 반드시 확보하되, 이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민간의 자율성을 존중하여야 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 소유규제는 매체의 종류가 많지 않았던 시절에 의견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수단이었지만, 그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의견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다면, 규제보다는 자율을 더 존중하는 것이 우리 헌법이 지향하는 가치질서와 일치하며 미디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이제 처음에 제기하였던 문제에 대하여 답변할 때가 되었다. 첫째, 왜 지금이냐에 대해서는 지금도 늦었다고 답하는 것이 이성적이다. 의견 다양성의 핵심은 방송인데, 노무현 정부가 거꾸로 신문을 중심으로 의견 다양성을 추구하겠다고 나섰기 때문에 착시 현상이 발생하였을 뿐이다. 많은 선진국들이 방송의 소유규제를 재검토하고 있을 때 우리는 신문을 옥죄는 정책을 펴온 것이 잘못이지, 지금 소유규제를 재검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둘째, 왜 특혜를 주느냐는 질문 역시 잘못되었다. 그동안 대기업과 신문사는 차별적 규제를 받아왔기 때문에 이번 방송법 개정은 특혜의 부여가 아니라 차별대우의 시정이다. 과거 차별대우는 매체의 수가 한정되고, 우리 사회의 민주적 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하였기 때문에 부득이 한 것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민주화되고, 매체가 다양화된 이상 차별적 조치는 시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진입장벽 통해서는 미디어산업 발전 기대 못해

셋째, 방송법 개정으로 일자리를 얼마나 창출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하는 한 규제완화가 정당하지 않다는 논의로 이어지는 한, 잘못된 것이다. 앞서 본 바처럼 의견 다양성을 충족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으면, 방송도 민간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그럴 때 개인과 기업의 창의가 발휘되고, 그 결과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지금처럼 진입장벽으로 소수의 방송사업자만 활동하도록 허용하는 한 미디어 산업의 발전은 기대할 수 없고, 세계적인 미디어 기업의 출현도 기대하기 힘들다.

한나라당의 방송법 개정안은 미디어 환경변화에 중점을 두고, 미디어 산업에 대한 국가 개입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자율적 영역을 중시한 것이다. 규제를 최소화함으로써 민간이 자율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넓혀 주면, 미디어 산업도 국제 경쟁력을 갖게 되어 우리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것은 타당한 접근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의 큰 흐름에서 보면, 소유규제의 완화는 불가피한 일이다. 다매체 시대의 의견 다양성의 확보 방법은 과거 매스 미디어 시대와 달라야 한다. 소유규제는 주파수의 제한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방송을 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주체를 선정하여 그에게 의견 다양성을 맡기는 방식이다. 그러나 주파수의 제한이라는 기술적 장벽이 해소되면서 소유규제는 오히려 진입장벽으로 작용해 기존 사업자를 보호하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독일 등 많은 유럽 국가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소유 규제를 포기하고 시청점유율 규제로 전환하였다. 시청점유율 규제는 현재 유럽에서 의견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방식이다. 누구나 방송사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그 대신 특정 사업자가 방송시장의 1/3이상 점유하게 되면 의견 다양성을 훼손할 수 있다고 보아 규제하는 것이다.


유럽의 소유규제 완화는 건실한 공영방송이 기반

유럽이 소유규제를 완화할 수 있는 또 다른 배경은 공영방송에 있다. 미국과 달리, 모든 국민에게 교양, 정보, 오락을 기본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공영방송이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민간영역에 자율적 공간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다. 방송법 개정이 공영방송의 강화와 같이 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방송 규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국민이 다양한 의견을 보편적으로 접할 수 있도록 하자는 데 있다. 신문사와 대기업에 대한 차별적 제한을 풀어 미디어 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고 의견 다양성을 제고하겠다는 방송법 개정 방향은 올바른 것이다. 다만, 신문사와 대기업이 진출할 때 발생할 수 있는 여론 독과점의 우려를 고려하여 안전판을 확실히 마련하자는 논의는 경청할 만하다. 공영방송의 건실한 운영방안을 모색하고, 시청점유율 제한제도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할 시점이다.


- 출처 : 대한민국 정책포털(www.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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