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런 승복보다 더 빛나는 것은 진실한 협조다

'승리보다도 더 자랑스런 승복!'. 우리 국민은 지난 2007년 8월 20일 오후, 한나라당의 17대 대통령후보 경선이 끝나자마자 박근혜 후보가 단상에 올라 담담한 어조로 아무조건도 없이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의 대선승리를 기원했을 때 이렇게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혔었다.

그러나 이러한 감격은 순간이었을 뿐, 대통령이 된 이명박 측에서는 '승자의 오만'을 한껏 뽐내면서 패자인 박근혜 측을 야당보다도 더 사갈시(蛇蝎視)하면서 번번히 그들의 자존심을 짓밟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이재오의 "경선이 끝난 지금도 당내에는 이명박을 대선후보로 인정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독선과 오만에 넘친 엄포였다.

이재오의 이런 막말로 인한 거센 반발이 자칫 대선가도에 빨간불로 번질 우려가 짙어지자 이명박 후보는 그해 11월 기자회견에서 박근혜를 "중요 국정현안을 협의 할 소중한 동반자"라며 화해의 손짓을 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2인자로 자처하는 최측근 이재오를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심정으로 최고위원직에서 사퇴시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최고위원직에서 물러난 이재오는 비겁하게 그늘에 숨어 이방호 사무총장을 손발 부리듯 하면서 18대 국회의원 후보공천을 좌지우지했다. 수많은 박근혜를 지지했던 인사들을 공천에서 탈락시켰다. 그 결과 '친박연대'라는 정파가 탄생했고, 친박계는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이재오가 공천한 한나라당 후보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금뱃지를 달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할까, 인과응보(因果應報)라 할까. 공천을 떡주무르듯 했던 이재오와 이방호는 총선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되었다. 이재오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국을 떠도는 신세가 되었으며, 이방호는 소중한 의석을 빼앗겨 빨갱이 깡패 강기갑으로 하여금 국회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정치무대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이재오 이방호가 낙방하여 18대 국회에는 얼굴을 내밀지 못했으나, 그들이 저지른 엄청난 죄과의 파문은 지난 1년간 대한민국의 정치를 3류 코미디로 만들고 말았다. 그들은 182석이라는 공룡(恐龍)여당이 된 한나라당을 친이계와 친박계로 갈라놓고 '한 지붕 두
' 살림을 꾸리게 함으로써 오히려 자기의 상전인 이명박 대통령의 발목을 잡아왔다. 

취임 1년동안 아무 일도 못한 이명박 대통령

오는 25일이면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일주년을 맞는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온 세계가 경기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영향이라고는 하지만, 이 대통령 정부 1년동안의 성적표는 아무리 좋은 점수를 주려해도 낙제점을 면하지 못하게 되었다. 마이너스 성장을 한 경제가 그렇고, '하늘아래 둘도 없는 국회'를 만들어 낸 정치가 이를 잘 증명하고 있다.

지난 4/4분기 국민총생산은 -5.8%라는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2008년 1월의 수출은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32.8%가 줄어들었다. 1월 중 수역수지도 29억 7천만 달러 적자를 냈다. 전체기업의 33.6%로 미국의 4배나 되는 자영업도 점차 감소추세를 보이면서 7백만을 육박하던 것이 지난 12월에는 22만개가 감소하여 이젠 597만개로 줄어들었다. 그만큼 실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정치 쪽으로 눈을 돌리면, 절로 한숨부터 먼저 나온다. 민주당, 민노당이라는 두 야당이 불법 '광우병 촛불집회'에 몰입하면서 3개월 남짓 국회를 원구성도 못하는 '등신(等神)'으로 만들었다. 2009년 새해 예산안도 헌법의 규정(12월 5일)을 지키지 않고 12월 13일에야 겨우 통과시키는 '헌법무시 국회'이기도 했다.

정작 가장 부끄러운 것은, 민주당과 빨갱이 민노당이 합세하여 정기회 막바지에 들어 해머와 전기톱으로 국회의 문짝을 두들겨 부수더니 급기야 각 상임위는 물론, 국회 본회의장까지 점령하여 대한민국 국회는 '폭력깡패 집단'이라는 것을 세상에 널리 홍보하는 기록을 세운 일이다. 

이렇게 소용돌이 친 사회적 혼란과 깡패폭력 국회의원들로 인한 정치적 난맥 때문에 경제를 살리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담긴 중요한 민생법안 어느 하나도 제때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이명박 정부에게는 하고자하는 의욕이 아무리 불같았다고 가정하더라도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던 악동과도 같은 1년이었다.

박근혜를 소홀히 한 것이 국정실패의 뿌리

©김상문 기자
특히 한나라당의 친이, 친박 두 진영의
은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추진에 커다란 장애요인이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182석의 한나라당이 82석의 민주당에 국회운영의 주도권을 빼앗긴 근본 원인은 당내화합을 이루지 못한 데에 있다. 

당내의 불협화음은 곧바로 국정 실패로 이어졌고, 그 결과 고통받는 국민에게 올바른 처방약을 주지 못한 가장 큰 책임은 누가 뭐래도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국정의 소중한 동반자'라던 박근혜에게 한 약속을 지킨 적이 없는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의 결함은 본인 스스로 바로잡지 않으면 안되는 자의식(自意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은 한나라당 중진 23명을 청와대로 초청하여 오찬을 함께했고, 공교롭게도 이 날이 박근혜 전 대표의 57번째 생일이어서 생일축하 케이크도 박 전 대표와 함께 잘랐다고 한다. 그러나
만에 만난 두 사람만의 대화는 없었고, 시종 긴장된 분위기에서 모임은 끝났다고 한다. 

이 대통령 측은 아직도 박근혜를 "소중한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일 터이다. 박근혜 측에게 오찬에 초청한다는 팩시밀리 한 장을 달랑 보냈다가 "전화라도 걸어 초청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냐"는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니 더 말해 무엇 하랴. 그래도 지난 1년동안의 국정경험에서 얻은 자기반성적인 교훈을 얻지않았을까하는 '바보스러운 믿음' 때문에 걸어 본 기대였다.

박근혜 전 대표는 오찬에서 "쟁점법안일수록 국민의 이해를 구하고 공감대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박 전대표는 "정부가 바라보는 쟁점법안에 대한 관점과 야당과 국민이 보는 관점에 차이가 있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기에 한 말이라고 해석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민생을 위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갖고 내놓은 법안들이 지금처럼 이렇게 크게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야당이 반대를 하면서 '쟁점법안'이 되었고, 반정부 시민단체와 일부국민이 이에 동조함으로써 하루아침에 이른바 'MB악법'이라는 멍에를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박 전 대표가 한 말은 야당의 반대에 부딪친 법안은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원론적인 논의라고 할 수도 있으나, 정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라이벌에 대한 포용과 인내를 은연 중에 주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나아가 정부의 시책이나 법안들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얼마나 진지하게 정치적 라이벌들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한 적이 있느냐는 따끔한 충고일 수도 있다. 

박 전 대표의 지적처럼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쟁점법안들이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고 고통을 안겨준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그 법안들에 대해 국민 대다수가 정부와 관점을 달리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사사건건 이명박 정부의 발목을 잡으려는 야당과 친김정일 세력의 불법시위와 악선전 때문에 소수 국민들만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박근혜 전 대표가 협력할 때

패자가 승자에게 승복하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고 아름답게 보인다. 그러나 패자가 자진해서 승자에게 협력하는 것은 승복과는 차원이 다른 가치와 리더십의 문제다. 승자가 관용을 보여주지 못하고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패자가 오히려 적극적으로 승자의 협량(狹量)을 이해하고 협조하는 일은 높은 수준의 리더십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지금 차기 대권주자로서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정치지도자다. 그에게 국민은
만에 친김정일 세력에게서 되찾은 대한민국을 굳게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그 길은 이명박 정부와 협조하고 한나라당을 추슬러 바른 정치로 이끌어 누란의 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을 구하는 오직 그 길밖에 없다.

이러한 국민의 여망에 보답하는 길은 박 전 대표와 그 세력들이 승자가 패자를 배려하지 않았다고, 약속을 지키지 않고 오히려 사갈시하고 숙청하려 했다고 불평만 하지 말고 팔을 걷어부치고 적극 협조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오히려 승자 쪽이 부끄러워하지 않겠는가.

승자의 오만과 독선 같은 하찮은 것에 구애되지 말고, 정치적 불신과
역경 속에서 거꾸로 매달린 고통을 겪고 있는 대한국민을 위해 "국정의 소중한 동반자"로서 스스로 이명박 정부에 적극 협력함으로써 패자의 참다운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 박근혜와 그 세력들에 주어진 역사적 사명이다. [e중앙뉴스 기사제휴사=브레이크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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