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설에는 묵은 곡식 중에 모양이 안 좋은 것들은 쪄서 떡국을 만들어 먹었고 상태가 좋은 것들은 모아두었다가 대보름 때 오곡밥을 해 먹거나 한해 농사를 위한 씨앗으로 썼다. 비약하자면 설날이란 지난 한해의 묶은 때를 깨끗이 씻어 내고 새로운 출발을 다짐하는 직장에 비유하자면 시무식과 같은 가족단위 행사였던 것이다.

이런 행사라는 점에서 설날이란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먹을 것이 넘쳐난다는 특징이다. 하지만 밀가루와 고기로 넘쳐나는 밥상 앞에서 비만으로 고민하는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산해진미에 군침이 돌지만 손을 대야 할지 참아야 할지 갈등하기 마련이고, 유혹에 못이겨 맛나게 먹고 나면 방금 전의 경솔함을 후회하며 황금호랑이 해의 다이어트 계획을 수정해야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온 가족이 모인 이 자리에 행여나 다이어트를 한다고 음식에 손조차 대지 않으려 하거나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소태 씹듯 인상을 찡그리고 전전긍긍하며 먹기라도 하면 연초부터 핀잔을 듣게 되니 이것이 바로 설날 밥상의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은 한 가지. 바로 ‘맛나게 먹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서 걱정을 하고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생각으로 식사를 하면 아무리 좋은 음식도 불량식품이 되어버리고 만다. 반대로 ‘괜찮아. 적당히 맛나게 먹고 소화가 잘되면 좋지’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그 음식은 약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점이 ‘맛나게 먹는 것’과 ‘많이 먹는 것’을 잘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비싼 코스 요리를 먹을 때, 첫 요리부터 욕심을 내어 젓가락질을 쉬지 않으면 점점 그 코스의 하이라이트와는 멀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메뉴를 잘 살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잘 분별해 계획적으로 젓가락을 돌리면 입도 즐겁고 속도 편안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우리네 설날 음식이 화려한 코스요리는 아니더라도 그 다양한 요리들을 ‘맛나게 먹는 것’과 ‘많이 먹는 것’은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자고로 한식이란 다섯 가지 맛(五味)의 적절한 조화로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건강요리이다. 즉, 그 구성상의 조화가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먹거리라는 의미인데, 몸이 건강하고 평안해지기 위해서는 이렇듯 먹는 음식에서의 조화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돼지편육은 새우젓을 찍어 먹어야 소화가 편하고 매운탕에는 깻잎이 충분히 들어가야 물고기의 독을 풀어준다. 서양음식으로 예를 들자면 스테이크는 와인을 곁들여야 동물성지방의 분해가 수월해지기 때문에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인데 오늘날엔 스테이크와 탄산음료를 찰떡궁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조화가 깨지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설날 상에 오르는 음식들은 대부분 밀가루 음식이다.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은 밀가루 음식 즉, 떡이나 백설기, 송편 등을 먹을 때 항상 조청이나 시원한 동치미를 함께 내어 먹었다. 조청은 밋밋한 가래떡에 단맛을 더하기 위한 것이고 동치미는 소화가 잘 안 되는 밀가루 음식과 찰떡궁합인 천연 소화제이다. 혹자는 “추운 겨울에 왜 차가운 동치미를 먹느냐”며 반대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동치미에 들어있는 무는 성질이 따뜻하기 때문에 오히려 겨울철에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아울러 장의 운동을 도와 소화를 쉽게 해주고 해독작용이 뛰어나며 잔기침에도 일정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이번 설날에는 소화제를 떠올리기 이전에 동치미를 준비하는 것 또한 권할만하다.

그리고 하나 더하자면 음식 메뉴만큼 중요한 음식을 먹은 후의 자세이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식후에 거실이나 아이들 방에 삼삼오오 모여서 그간 못 나눈 이야기를 나누거나 다 같이 TV를 보면서 말 그대로 푹 쉬게 되는데, 이 역시 소화 장애는 물론 다이어트에는 최악의 상황이다. 맛나게 먹은 상을 치우기 위해 주방일이 산더미라면 남자들도 같이 일을 거들어서 마무리하고 오래간만에 만난 가족들과 다 함께 모여 흥이 나는 윷놀이를 한번 해보는 건 어떨까? 다 같이 모인 소중한 시간에 TV앞에 삼대가 나란히 낮잠을 자는 모양은 누가 보기에도 즐거운 명절과는 거리가 멀지 않은가?

도움말:화접몽한의원 압구정점 원장 허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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