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해가 저물고 밤이 찾아와
어두운 하늘에 달이 떠 오르면
얼마나 많은 생각의 편린들이 옛 사람들의 가슴을 스쳐갔던 것일까 ?
고단한 일상을 잠시 잊은 채 그 포근한 정취에 취하여
대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자신을 느꼈을 지도 모를 일이다

▲ 싱가폴 야경     © 신영수





















바다는 꿈꾸는듯 고요한데 달은 한껏 솟아올라 밤을 밝히고 있다
구름없는 하늘이건만 별들은 저 멀리서 수줍은 듯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어쩌다 마주치는 항해중인 선박의 불빛이
한가로운 아름다운 밤

시리도록 창백한 빛의 향연
푸르스름한 기운에 휩싸여 사뭇 고즈넉하다
누구나 달에 얽힌 추억을 한 두가지씩은 가지고 있으리라
더군다나 예전의 달은 그저 꿈과 이미지와 낭만의 대상으로서만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어두운 밤을 밝혀주는 실용적인 가치를 지닌 존재로서
사람들의 생활에 단단히 밀착되어 있었던 까닭에
옛 사람들의 달을 향한 정서는 곧 삶의 정서와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밤 하늘의 허허로운 공간에 시추선에서 삐져나온 크레인 팔 하나가
대각선으로 뻗혀 있었고 그것은 길다란 실루엣을 이루고 있었다
그 직선의 실루엣 끝자락에 살짝 얹힌듯 새초롬하게 선명한 초생달이 걸렸다
크레인의 기다란 실루엣 중간쯤에 그리 밝지 않은 빨간 전등이 조그맣게 빛나고 있었는데
그 것들의 어우러짐이 묘하게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을 자아내어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었다

당시의 초생달이 밤마다 체중을 불어 저토록 만월이 다 되어가는 동안
우리의 배도 수리를 다끝내고
지금 이렇게 그 달아래 바닷길을 항해하고 있는 것이다
달이 무르익어 가는 동안 싱가포르는 나에게 어떤 인상을 심어 주었는가 ?
조선소 정문 앞의 널찍한 잔디 축구장과
그 옆을 끼고 도는 도로의 여기저기에 피어있던 꽃나무들의
소박한 아름다움 바로 그 앞에서 249번 버스를 타던일
그 버스의 종점이 싱가폴의 서부에 위치한 주롱지역의 분레이 버스터미널이 있는데
터미널과 잇대어 같은 이름의 전철 종착역이 있었다

전철을 타고 오트람 파크(Outram park)역에 내려 5분가량 걸으면
피플스 파크라는 지역이 나온다
그곳은 주로 각국의 선원들이 집결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곳으로
선원들을 상대로 술등을 파는 널짝한 홀이 인상적이였다
그곳을 중심으로 커다란 상업구역이 형성되어 있었다

홀안 가득히 들어 앉아 술을 마시고 았던 수 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의 표정이 지금도 선명하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2층버스를 타고 정처없이 시내 관광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무작정 내린 서머셋(Somerset)역 부근의 백화점 밀집지역에서는
운치가 그만인 제즈바를 찾아내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네명으로 구성된 캄보 밴드가 신나게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면
곡이 끝날 때마다 좁은 홀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를 보내곤 하는 것이었다
몇번째 곡을 연주할때였던가
스무살이 될까말까한 어릿한 백인 계통의 소녀아이가 길을 가다말고 밴드를 올려다보며
정말로 신난다는 듯이 몸을 흔들흔들 하다가 곧 제 갈길을 가버렸다

아 !
그 찰라의 상큼함이라니
그러나 정작 내생각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것은
그러한 구경거리로서 드러난 싱가포르의 피상적인 모습이 아니다
미스터 탁산 ! 그는 방글라데시에서 왔다고 했다
그는 세계를 살고 있는 보편적인 인간의 모습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싱가포르의 조선소에 와서 일을 한지는 5년
고향에는 부인과 두 아들이 있다고 했다

그동안 돈을 많이 벌었느냐는 질문에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날카로운 인상에 응시하는 듯한 눈빛을 가진 그는
냉소적인 성격이어서
무엇을 물어보아도 성의있게 대답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사람을 빤히 쳐다보는 눈길이 고와 보이지는 않았다
웃을 때는 얼굴 전체의 근육을 움직이지 않고 한쪽 눈을 깜짝깜짝 하며
반족의 얼굴만 싱긋 웃는 모습이 그리 사랑스럽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영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날마다 대하는 얼굴인대도 처음과 다름없이 항상 몸을 꼿꼿이 세우고는
마주치면 무표정하게 바라보는 폼이 한결 같았다

▲     © 신영수





















출항하기 전날
선내 식당에 들어와 잠시 쉬고 있는데
예의 무표정한 얼굴로 그가 들어 왔다
내일이면 우리는 떠난다 그동안 즐거웠다
싱가포르에 있는동안 건강하기 바란다
그런데 앞으로 얼마나 더 여기에 머물 예정인가 ?
그는 곧 응답했다
4년을 더 있으려 한다
그 때는 부자가 될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뒷 주머니에서 작은 사진첩을 꺼내 보여 주었다
가족사진 이였다
부인이 미인이고 아이들도 무척 귀엽다고 했더니
그는 그들이 그립다고 말했다
그러다가 그이 부인에 대해 짖굿은 농담을 할 양 으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항상 냉담해 보이던 그의 두 눈에 눈물이 하나 가득 고여 있었던 것이다
타인에 의해 무관심한 듯 보이던 그의 내면은
고향에 두고온 온 가족을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나는 이 조선소 안에 수 많은 탁산 들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레이지아.인도네시아.태국.인도.스리랑카.방글라데시.
심지어 중국 상하이에서 왔다는 스무살을 갓 넘긴 친구도 있었다
그야말로 다국적군이 아닌 다국적 산업전사 들인 셈이다

▲     © 신영수























싱가포르의 1인당 GNP가 약 2만 달러에 육박하는 현실의 이면에는
한달에 단돈 500 달러를 받고 기꺼이 산업전선에 투입되어 있는
이방인들의 존재가 있었던 것이다
비교적 왜소한 체격에 거무스럼한 얼굴을 한 그들은 마주칠때마다
늘 선량한 미소를 짓곤 했다 그대들도 때로는 달을 마주 쳐다보는가 ?
그러면 무슨 생각이 그대들의 가슴을 스치는가

바라건데 그대 모든 탁신들의 인생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저 저 달의 살찐 모습만 같아라
그대들이 힘써준 덕분에
우리 배는 전보다 물살을 가르는 속도에 더욱 힘이 붙었다
그만큼 그대들로 부터 빨리 멀어지고 있겠지
그대들이 좀 더 나은 인생을 위해
그곳에 있듯이
나 또한 똑 같은 이유로 갈길을 가야 한다

밤은 깊은데 달은 더 한층 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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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뉴스 /신영수 기자/  youngsu49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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