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바다의 모습을 그려보며

언제보아도 정겨운 남쪽 바다는
소금을 뿌린듯이 하얀 양식부표로 덮혀 청비늘 속살로 퍼득이고 있다
바닷가 언덕배기에 허위허위 오르며
참 부질없고 ,무모한짓이 아닌가도 생각했지만 결코 후회스럽지 않다

거울같은 바다
영도 고갈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얼굴을 간질이고
하늘엔 보름달이 두둥실

갑판위에 돗자리 하나 깔고 친구들 불러모아 술이라도 한잔씩 나누고 싶다
프로펠라의 회전음이 어릴적 추억을 불러일으키면
나는 갑판에 기대어 서서 고향생각이라도 하며 노래라도 부르고 싶다
그래 ,휴가 때 집에서 쉬고 있노라면 불현듯 다시 바다로 떠나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건

저놈의 바람소리와 달빛 때문인지 모른다
그것 때문에 많은 선원들이 바다를 떠났다가도

어미 품을 찾는 병아리처럼 다시 바다로 돌아오는 것일게다
갯가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서 휘 휘 둘러보았지만
내 인생의 바다는 한갖 추억 뿐이다



그래 !
오늘 또 떠나보는거야
추억여행을 ----------------------

바다를 의인화하여 인생적으로 표현 해 본다면
아마 이럴것이다
봄바다는 유년기와 같아서 부드럽고 섬약하며
여름바다는 청장년처럼 열정적으로 약동하며
강한 생동력과 추진력을 갖고 있으며
가을바다는 불혹의 연륜에 접어들면서 차분히 가라 앉아 가끔 뒤돌아보아지며
물빛처럼 사념이 깊어지는 그런 인생의 장이며
겨울바다야 말로 세계절의 바다를 마감하며
인생에 책임을 지고 돌아갈 시간에 대해 스스로 예비하여야 할때라고 했다

그래서 겨울바다는 춥고 황량하며 뼛가루 같은 눈이 내리지만
내재해 있는 그 어떤 생의 충만된 은혜를 감사히 여겨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파리잰느는 파리에서 태어나 파리를 사랑하다
파리에서 죽는다고 한다
파리를 사랑하고 프랑스인임을 자승하는 파리시민의 애향심을
가장 잘 드러낸 말이라 생각된다



 
이 말을 떠올릴때마다 나는 과연 해양인으로써
얼마만큼 바다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스스로 물음을 던져보곤 골몰히 갸우뚱 거려볼 때가 있다

나는 남쪽바다의 끝자락 부산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초량동에서 태어났다
바다를 한눈에 굽어보는 산마루에서
비알비알 판잡집들이 이마를 맞대고
고불고불 갈매기들이 한가로이 떠도는 그런 갯내음이 물씬 풍기는 동네에서 유년을 보냈다

검정사표를 쓰고 똑딱선을 내리면 내고향 부두엔 길보다도 사람이 많았소 라던
청마의 싯귀처럼



 
자갈치시장에는 장꾼을 가득실은 인근도서벽지에서 찾아온 통통배.돛단배들이
항구안에 빼꼼이 들어차고
저자거리엔 발디딜틈도 없이 행인들이 파도처럼 밀리곤 했다
지금은 오래전에 사라진 풍경이지만
연안부두자리엔 춘향이를 가둔 옥문처럼 니나노 술집들이 얼기설기 엮여있는 집들 앞에서
메가폰을 잡고 "삼천포"'여수' 방면이요
고래고래 고함을 치던 여객선 기도의 익살스러운 모습이 퍽 기억에 남는다

평소에도 늘 바람이 잦았지만
폭풍주의보라도 내린날이면 주머니처럼 오목하게 생긴 선창안이
온통 배들로 굴비를 엮어놓은듯이 들어차
울울장장한 숲을 이루어 일대 장관이었다
이런 자연환경속에서 알게 모르게
인생의 바다에 가까워졌는지도 모르겠다 ------

입으로만 익혀온 바다를 떠나
몸으로써 바다에 뛰어든 선상생활 어언 28년
아 !

바다는 참으로 참혹했다
누가 말했던가
허무의 바다라고 --------
삶의 냉혹한 전쟁터였고
생존의 바다였다
어느때인가
이제는 떠나리라.떠나리라 하면서도
그 얼마나 부르짖었던가

그러나 그럴수록 바다에서 쉽게 풀려 나오지 못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
지금껏 인생의 바다에서 허덕이며 살고 있다
참으로 묘한것은 오십대 후반에 접어들면서도
그 어떤 바다에 애착을 느끼는 것을 보면
바다의 실체에 어느정도 나름대로 접근 한것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지만

따지고 보면 바다가 좋아
스스로의 마음의 움직임에 의한
바다에 대한 기개가 아니라
삶을 영위하기 위한 인위적인 환경의 조건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뱃사람들이 다 그럴진대
만기근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그 기분은 어디에도 비길수 있으랴
뿌듯이 성취감을 안고 집으로 돌아오면 반갑게 맞아주는 가족.친지들.

처음 한 동안은 고된 선상생활을 언제 했냐는 듯이 즐겁게 보내지만
하루.이틀. 시간이 흐르면 무료해 지기 시작한다
어디 꼭,오라는데 없고
갈곳도 없고

남들은 아침이면 출근을 하고 해가지면 귀가를 하는 그런 모습을 보노라면
웬일인지 자신이 무능한것만 같고
무기력 해지고
시간이 남아돌아
바람이나 쐴겸,외출하다 보면 자연 돈 슬일이 생기고
충동적으로 쓰다보면 씀씀이가 헤퍼
비용의 후회만이 가득 남는 그런 리듬을 잃은 생활이
선원들이 육상에서 오래 발 붙이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바다는 분명 매력은 없을망정
적어도 알수 없는 마력은 있는 곳이다
그것 때문에 많은 선원들이 바다를 떠났다가
어미품을 찾는 병아리처럼 다시 바다로 돌아오는 것일게다

인생의 바다에 휘황한 불을 밝혀 놓고
나는 나의 젊은 시절을 바람이 불어대면 기도 드렸던 ,꿈을 꾸었던
그런 인생을 살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희망을 버리진 않았다
언젠가는 이루어지리라 믿으면서 --------------------

겨울바다는 어느새 기울어 짙은 색조를 머금으며
일모의 한시간을 탕약 끓듯이 긇고 있다
이제 더 오래 이야기를 나눌수가 없을 것 같다

못내 아쉽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야겠다
내년 겨울에나 더 인생의 바다 이야기를 해야겠다
세상사는 일이 약속 같을 수가 없을 것 같기에 말이다
내 특유의 인내를 발휘해야만 할것 같다

먼 허공으로 놓혀버린듯 인생의 바다
아쉬움으로 가슴이 저려온다
회한 같은 것일수도 있을것이다
어디선가 바다가 나를 부르는 것 같다
환청이 아니길 빌어야지
지금 이순간
내일을 맞이할 인생의 바다에서 큰 바다의 모습을 그려보며


                        중앙뉴스 / 신영수  / youngsu49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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