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지나해의 갈매기 비밀 (외로운 선장의 선택)

보이는 것이라곤 오직 끝없이 펼쳐진 배춧잎 색갈의 망망대해와
파란 하늘이 맞닿는 수평선 뿐이었다
가뭄에 콩 나듯이 가끔씩 지나다니던 항행선들은 고사하고
선체를 감싸버린 수평선 너머로
살짝 내비치던 선박들의 마스트 조차도 전혀 보이질 않는다
1만2천 톤 급의 대형 화물선인 본선의 잔영에 의해
깜짝 놀란 듯이 허겁지겁 날아 오르던 날치의 무리들 조차도 전혀 튀어 오르질 않는다

섭씨 32도가 오르내리는 따가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높다란 윙 브리지에 서 있는 나는 흘러내린 땀으로
셔츠가 찰싹 등에 달라붙어 있어도 개의치 않고 전방만 주시하고 있다
어선으로 보이는 소형 선박이
본선의 진로상에서 움직이질 않고 떠 있다는 보고를
당직중인 2항사로 부터 받고 윙 브리지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오른 쪽에 있는 베트남까지는 230 마일이 떨어진 남지나 해상의 한 중간 지점에서
어장으로서 갖추어야할 여건이 하나도 갖추어져 있지 않은 이 곳에서
소형 어선이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는 건 상상도 할수 없는 현재의 본선 위치 인 것이다
나는 의아스러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망원경으로 자세히 바라보았다

거리가 멀어서 어떤 판단을 내릴 만큼 세밀하게 보이질 않고
마치 안개 속에 휩싸인 것처름 희미하게 확대되어 보일 뿐이다
레이다 마스트엔 유난히도 하얀 갈매기 한마리가 홀로 앉아
검은 눈동자를 껌벅이며 땀에 흠뻑 젖은 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 보고만 있다

망원경에서 눈을 땐 나는 브리지로 들어가 레이더를 들여다 보았다
소형 선박과의 방위와 거리를 체크 해본다
우현 10도 방향으로 5.8마일 떨어진 거리에서
움직이지도 않는 탓인지 방위도 변하지 않고 고정 되어 있다

"선장님 ! 깃발 같은 것들이 마스트에 가득히 매달려 있습니다"
2항사의 보고에 윙 브리지로 뛰어올라가 망원경으로 자세히 바라보니
"그렇군 국제신호기류와는 전혀 다른 깃발들이 걸려있군 "
"혹시 뭔가가 움직이는가 자세히 찾아보게 "
다시 레이다로 달려갔다
스코프 상에 나타나 있는 조그마한 물체는 방위를 변하지 않은 채로
5 마일로 좁혀지고 있다
"움직이는 물체라곤 깃발 외에는 아무것도 안 보이고 그냥 떠 있습니다"
"아무도 그럴리가 없는데"

약 15 톤 정도로 보이는 케케묵은 목선이
시커멓게 그을릴대로 그을린 채
요란스러울 정도의 헝겊 나부랭이를
조그마한 마스트에 잔뜩 메달아 놓고 떠 있을 뿐이다




나와 2항사는 동시에 마주보며 갑자기 얼굴 가득히 얼어붙은 듯 입을 다물어 버렸다
두려움과 공포의 빛이 두사람의 얼굴 가득히 나타나 묘한 표정으로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보이는 것이라곤 하늘과 바다와 맞닿은 수평선 뿐이고
들려오는 소리라곤 우렁찬 기관 소음 뿐인 윙 브리지에 싸늘한 정적이 내려 앉는다
한 참만에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베어나왔다

"표류중인 조난선이 "
엄습해 오는 정적속에 가슴 조이던 2항사가
숨죽인 목소리로 되 묻는다
"조난선이라구요"
"그래 !

유령선은 아닐테고 조난선 일꺼야
선내 방송으로 전 선원들에게 알려"
"타수 키 포트 텐 "
두사람의 거동만 지켜 본채 잔뜩 긴장하고 있던 타수는
고함치듯 소리를 지르며 오다를 내린 나를 쳐다보며 큰 목소리에 깜짝 놀라더니
재 빨리 타륜을 돌린다
타수의 복창소리가 나오기도 전에 다시 명령을 내렸다
"하드 포트 "
타수의 손놀림이 빨라짐에 따라 본선의 육중한 선수는
가볍게 왼쪽으로 기우뚱거리드니 서서히 방향을 바꾼다
대각도 전타로 인해 선수는 재빨리 왼쪽으로 돌기 시작한 것이다
전방에 떠 있던 목선이 우현으로 밀려나자 안전거리를 유지
다시 원상태의 침로대로 선수를 돌리도록 지시했다

선내방송으로 마이크를 잡고 전 선원들에게 알렸다
"조난선 접근중 ! 조난선 접근중!
전원 비상 부서 배치 ! 전원 비상부서 배치 1

요란스러운 벨소리와 스피커에서 울려퍼진 목소리가 넑히고
고요하기만 하던 본선의 실내를 온통 뒤집어 놓았다
반복해가면서 방송을 하고 있는 2항사의 이마와 콧등에는
에어콘이 돌아가는 시원한 브리지임에도 불구하고 땀방울이 맺혀졌다
기관실 당직자는 컨트롤 룸에서 한발자국도 떠나지 말것"
"스톱 엔진 "

2항사는 텔레그래프의 핸들을 힘껏 스톱 위치로 옮겨 놓는
바로 기관실과 직통인 인타폰을 집어들고
기관실 당직사관에게 현재의 상황을 알리고 있다
이때 선내방송을 듣고 항급히 1항사와 통신장이 달려왔다

"조난선을 발견 했어"
"어디야 ?
조난선이 어디 있읍니까 ?"
나에게로 달려와서 내가 가르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전방에 떠있는 소형선으로 시선을 고정시키더니 금새 표정이 굳어져 버린다
금방이라도 내려앉을 것 같은 시커먼 목선이
움직이는 사람 한 명 없이
온갖 색깔의 헝겊 조각만 매달고 가만히 떠 있자
두 사람의 표정에도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변해 버린다

갑자기 울려퍼진 비상 벨 소리와 방송에 놀란 부원들이 앞을 다투며 상갑판으로 뛰어나와 우왕좌왕 하고 있다

기관을 정지한 본선은 타력만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항해사에게 워키토키를 가지고 선수로 가서 상황을 보고하고
2항사는 레이다로 거리를 체크해줄것을 지시했다

본선은 아주 느린 속력으로 서서히 목선을 향해 다가간다
남지나 해상을 맹렬하게 내리 쬐고 있는 뜨거운 태양이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치듯
마치 불과 같이 뜨겁게 내려 쬐고 있다
나의 얼굴과 목덜미엔 온통 땀방울이 맺혀 있고 셔츠는 거의 수세미가 되어 있다
레이더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던 2항사의 보고 소리가 고함소리로 터져 나왔다
"현재거리 1.8 마일까지 접근 했습니다"

1.8 마일 ------
스톱 엔진 !
다시 엔진을 정지한 본선은 아주 미세한 타력만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가 흘러내린 땀을 소매끝으로 닦고 있는데

항해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워키토키에서 튀어 나왔다
"선장님 ! 갑판에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
"뭣이 사람이 있다고 ?
움직이냐 "
"움직이지는 않고 모두들 꿈적도 않은채 누워만 있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는 확인 할수가 없습니다

"갑판장과 부원들에게 지시하여 파일럿용 사다리와
그외의 모든 사다리를 우현측에 설치하게 빨리"
워키토키에서 흘러나온 나의 목소리를 듣고 있던 부원들은
항해사의 지시가 떨어지기도 전에 갑판 창고로 달려간다
본선의 선수에서 목선 갑판이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을 만치 가까운 거리로 접근하자
자세히 보이지 않던 목선의 갑판이 훤히 보인다



"선장님 !
여자들과 어린애들도 보입니다"
여자와 어린애가 보인다고 ?"
"옛. 멋대로 누워있는 남자와 여자들 사이사이에 어린애들도 누워있습니다
모두 죽어있는 것 같기도 하고 ------"
"움직이는 사람이 한사람이라도 있는가 자세히 확인 해 봐 "
하고는 이제야 생각이났다
나는 윙 브릿지로 달려가 기적 핸들을 힘껏 돌려 놓았다

부ㅡ응----
바람 한점없이
정적만이 감도는
무더운 남지나 해상에 우렁찬 기적음이 긴 꼬리를 물고 멀리멀리 퍼져 나갔다

마치 나의 행동을 감시나 하겠다는듯이 잠자코 앉아 있던 하얀 갈매기가
기적소리에 놀란듯 황망히 날개를 펴드니 하늘높이 날아 오른다
바로 머리 위에서 공중으로 치솟는 갈매기의 존재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 다가와 있는 목선에서 시선을 거둘수가 없었다
"기적소리를 듣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항해사의 빠른 보고에 흥분해 버렸다
기적 신호 핸들을 놓고 고함치듯 되 물어본다

움직인다구 "
자세히 말해 봐 "
누워있던 남자들이 서지는 못한채 앉아 손을 흔들고 있습니다
살아 있단 말이지 ? "
'예 "
구원의 기적 소리를 듣고 일어난
보트피플 구조 일기입니다


                                중앙뉴스 /  신영수 기자  / younmgsu49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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