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이 부두에 접안 하역작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부두는 어느나라건 보세지역이라 일반인들의 출입은 통제되어있다
그런데 약10여명의 꼬마친구들이 나타났다
이곳 아가디르에는 70년대 후반부터 한국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 많은 한국 트롤어선들이 드나들고 있었다

아주 친근감을 나타내며 본선에 접근하여 본선의 선원들을 < 아빠 >라고 부르는것이였다
서로 자기 아빠 배라고 다툼까지 벌였다
자국선원 동승 의무로하여 스페인 웰바에서 승선한 모로코인이며 본선의 1갑원으로 있는 빅터 (본선에서 부르기 편리하게 지어준 이름 ) 로 부터 그 사연을 듣게 되었다

한국선원과 교제하여 탄생한 사생아들이였다
일정기간 계약기간이 끝나고 귀국한 선원들의 후예인 셈이다
떠나버린 아빠의 친구들이며 그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린 부두의 주인들이였다
또한 뒤에 이곳을 찾은 많은 한국선원들이 그들과의 교제를 이어오며
생활의 근간으로 삼고 있었다
꼬마들의 규칙에 선택된 자만이 본선과의 교제를 할수 있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되었다
빅터도 자기누이가 한국선원과 교제가 되어 조카가 있단다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마음이 무척 아팠다

꼬마들중 빅터의 조카가 자기의 외삼촌을 알아보고
본선에 대한 꼬마대장이되어 4명의 당직을 승선시켜줄것을 요청한다
아가디르는 다른지역보다 생활환경이 좋지않아 도둑이 많다고
현지사정에 밝은 꼬마 당직을 두게 되었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선원들이 시내 나들이에 나서게 되는데
빅터는 꼬마 한명과 같이 나서면 모든일에 도움이 된다고 권한다
지리도 익숙하지 않으며
언어소통에도 문제가 있고
경비절감에 아주 좋다고 선원들에게 장황하게 설명한다

꼬마들은 개중에 한국선원들과 친숙하여 제법 한국말도 알아듣고
자기집으로 가면 엄마가 반갑게 맞이한다고 우리선원들을 종용한다
나는 빅터의 초대로 시장을 들려 한바구니의 선물을 준비하고 빅터의 집을 방문했다
예의 빅터 조카도 동행했다
아가디르의 북동쪽 빈민가에 위치해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니까 꼬마가 뭔가를 아쉬워 했다
왜 하고 물으니 쌀과 빵이 부족하는대 좀더 많이 구입했으면 한다고 빅터가 부끄럽게 대신 말을 해주었다
그만큼 생활이 어렵다는 말이다

빅터에게 택시로 다시 본선에 돌아가서 한국선원 당직자에게 나의 메세지를 전해주라고 하고 빅터의 집을 들어서게 되었다
꼬마의 어머니는 불과 나이가 27세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그녀의 이름을 미세스 빅터로 부르기로 했다
정중하게 맞이하는것이 자기의 님이라도 다시 돌아온것처름 반갑게 대하는 것이였다
그녀는 그래도 꼬마의 아빠로 부터 많은 한국말을 배워 쉽게 의사 소통은 할수 있었다
집안 곳곳에 한국의 책과 카세트 테입 그림과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한집안에 9명의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3포의 쌀과 고기 생선을 가지고 빅터가 돌아왔다
갑자기 나와 빅터가 왔어 인지 집안에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꼬마는 아무것도 모른채 아빠친구라며 좋아하고---

모처름 먹는 밥인지 모두가 맛있게 먹고 커피한잔씩 하고
저녁의날씨는 사막의 바람이 멎고 시원하기까지 했다
늦은 시간이라 돌아가려해도 시내로 들어가는 차가 없단다
하는수없이 빅터와 함께 자기로 했다
기후탓인지 피로가 빨리 찾아와 잠이 들었다
야간 항해에 숙달되어 솔직히 나는 밤에 잠이 없는 편이다

새벽녁 이른시간 잠이 깨어보니 있어야 할 빅터는 보이지 않고
미세스 빅터가 곁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것도 xx 차림으로-----
놀라서 일어나는 나를 그녀는 조용히 하라고 손짓한다
이걸 어쩌나-----?
이걸 또 열거하면 어떤 여인이 가만 않있을 텐데 ------? ? ?

다음날 아침 귀선하여 하역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가디르 교민과 선원선교회 전도사님이 찾아왔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해외 선교단 일행도 있었다
함께 아가디르 교회를 방문하고 예배도 보고 국내통신도 전해듣고 현지사정도 이야기 하고------ 오후에 미세스빅터가 여러명의 친구와 함께 본선에 놀러왔다
알고보니 모두가 한국선원들과 교분이 있는 꼬마들의 어머니 였다

어차피 현지에서 필요한 인력이 있어 대리점과 상의하여
4명의 일자리를 불과 며칠이라도 줄수가 있었다
세탁이며 청소며 조리장의 부식구입 시내 나들이의 안내 등등------
나는 이들을 위해 선교사와 상의하여 조촐한 파티를 열어주기로 했다
500불의 금액을 교회에 기부하고 모든 준비를 전도사가 주관하기로 했다

일요일 아침 부두앞 정문에 미세스 빅터와 그녀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자녀들 모두가 모였다 선교사가 준비한 버스에 타고 목적지도 모른채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 선원의 선창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모두가 잘 따라 불렀다
완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진지하게 부르는 모습에 핏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게 되었다
80년대 초반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집단과의 분규로
모로코 전체의 경기가 나쁠때였기에 생활고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차
한국선원들과 교분을 갖게된 그들을 어찌 탓하리요
의학상식도 부족한 결과인것을-----?

버스가 멈춘곳은 시내를 벗어난 인적이 없는 사하라사막이였다
이슬람을 신봉하는 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은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들을 위한 기도회와 소풍위문 행사였다

먼저 선교사의 기도가 있었다
한국말과 프랑스어로 기도를 했다
주여 ! 저들을 궁휼이 여겨 주소서
주님의 무한한 은혜와 사랑을 주소서 이룰수 없는 게임으로 당신의 자식들이 잉태하여 여기 함께 기도하며 당신을 생각하게 이끌어 주소서
예수님 이름 받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저녁늦도록 함께하고 그들 모두에게
쌀한포 (20kg) 와 밀가루 한포 생선등을 나누어주고 위로했다
돌아오는길에 알수없는 이슬람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 하는 모습에 무척 보람을 느꼈다
배로 돌아와 순시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무렵 미세스 빅터의 아들이 나타났다
무대포로 나를 이끌기 시작한다

그녀가 정문에서 나를 오랜시간 동안 기다리고 있었단다
한국여인이나 외국여인이나 여자임에는 모두가 같은가 보다
그래서 모로코 아가디르에서의 하룻밤이 또 시작되었다

마도로스는 ------ 해양개척의 선구자로써
일찍이 셰계사의 흐름을 바꿔놓은 역사적 주역이며
셰계의 모든 국민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아왔다

희망봉을 거쳐 인도항로를 개척하고 동방무역의 물꼬를 턴 바스코다가마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최초로 선박으로 세계일주에 성공한 마젤란---

과거처름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많은 해상위험을 무릅쓰고
수출입화물을 수송하는 최첨병으로써 수산물을 생산공급하는 역군으로써
국가경제에 중차대한 역활을 수행해왔다

60년대부터 해외로 진출 그우수성을 인정받아 왔고
외화획득을 통해경제 발전에 기여해왔다
우수한 선원자원이 우리나라가 세계10권내의 해운국가로 발돋음하고 조선 해운 관련산업이 급성장하는데 밑걸음이 되었음은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리라
세계어느나라이든 해외무역이 발전하게 되면
그것을 원할하게 뒷받침하는 수단이 되는 해운의 발전을 모색하게되고
해운이 발전하면 선박을 조정할수있는 사람이 필요하게 되는것이다

1960년대부터 이루어지기 시작한 우리나라 선원수급은 해외취업의 일환으로 시작하여 외화벌이에 가득할수 있었다
또한 외국선에 승선하여 수많은 고초를 겪으며 기술을 배우고 익혀
선박의 운항능력과 해운경영의 노하우를 가지게됨으로
오늘날 해운발전을 이룰수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더 오늘도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마도로스들의 노고에
함께했던 동료이자 선배로써 치하하는 바다
마도로스들이여 내일의 영광을 위해 화이팅------! ! !

            중앙뉴스 / 신영수 기자 / youngsu490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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