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검은 돈 거래 의혹 진실공방... 그 끝은

검찰이 예고했던 것처럼 4월은 겨울보다 훨씬 잔인했다. 결국 부패 없고 반칙 없는 투명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마저 박연차 게이트에 한없이 초라하게 밑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또는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얼마를 어떻게 받았느냐는 사실 중요치 않다.

이미 노 전 대통령은 부정한 사실을 시인하고 국민 앞에 사죄의 뜻을 밝혔기 때문이다. 비록 참여정부 시절 국정운영의 미숙함으로 일부 실정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다수의 국민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마지막까지 살아 있는 양심이자, 절대 선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이 같은 믿음은 한 순간 물거품이 돼버렸다. 지난 한 주,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충격 속으로 빠뜨렸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던 사람들도, 그를 비판하던 사람들도 모두가 침통함과 충격 그 자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비롯된 정치권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당장에 4·29 재보궐 선거에 미칠 영향도 그렇지만, 민주당 입장에서는 중요한 한 축을 맡고 있는 친노세력이 초토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당의 존폐가 걸린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는 분위기다.

검찰의 박연차 회장 수사에는 브레이크가 없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지난 주말부터 줄줄이 소환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일가는 형님 건평씨를 비롯해 완전히 초토화될 위기에 몰렸다. 소환 대상은 노 전 대통령 부부에서부터 장남인 건호씨까지 언급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가족 4명 중 딸 정연씨를 제외한 3명이 어떤 형태로든 수사를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검찰수사에 노무현 일가 초토화

조카사위 연철호씨도 10일 오전, 결국 검찰에 체포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노 전 대통령의 형인 건평씨는 이미 지난해 12월 세종증권 매각과 관련해 불법 로비를 벌인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박 회장을 중심에 두고 노 대통령 일가가 방사형으로 연결된 모양새다.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소환 시기는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500만 달러를 송금 받은 연철호씨에 대한 소환조사 이후 이뤄질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아직까지 노 전 대통령만 소환할 것인지, 권 여사까지 동시 소환할 것인지를 두고 고심 중이다. 노 전 대통령이 4월7일 “저의 집에서 부탁하고 그 돈을 받아서 사용한 것”이라고 밝힌 만큼 당사자인 권 여사에 대한 소환은 불가피하지만 검찰도 전직 대통령 부부 동시 소환은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다. 자칫 표적수사로 비쳐져 역풍이 불 수도 있는 까닭에서다.

그러나 ‘자금줄’인 박 회장과 ‘전달책’인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과의 검찰 진술이 일치하지 않으면 권 여사도 직접 소환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벌써부터 각자의 주장은 갈리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사과문에서 빚을 갚기 위해 권 여사가 돈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검찰이 파악한 박 회장의 진술과 그 내용이 다르다. 검찰은 9일 권 여사가 박 회장으로부터 받은 돈은 노 전 대통령이 먼저 요구한 것이며, 빌린 것이 아니라 그냥 받은 것이라는 박 회장의 진술을 확보했고 조서도 받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또, 박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직접 건넸다는 10억원과 관련해 “차용증이 없고 빌려줬다는 말도 박 회장 쪽에서는 없다”며 “빌렸다는 얘기는 (노 전 대통령의)사과문을 통해 처음 알았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10억원이 한 번에 전달됐다. 박 회장이 현금과 달러가 들어 있는 가방을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노 대통령 측은 언론 등을 통해 권 여사가 돈을 빌린 사실을 노 전 대통령이 근래에 알았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재차 강조하고 있다, 박 회장과 노 대통령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4월8일 재차 자신의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과 검찰이 의심하고 있는 프레임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하며 사건을 점점 더 미궁 속으로 빠뜨렸다.

형님, 부인에 이어 아들까지

한편,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의 검찰 소환도 검토 중이다. 검찰은 건호씨가 500만 달러 투자에 연루된 정황을 포착해 수사하고 있다. 작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철호씨가 베트남에 있는 박 회장에게 찾아가 사업자금 500만 달러를 요청한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또 당시 500만 달러 투자는 정상문 전 비서관이 연결해 성사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건호씨가 연씨와 함께 투자를 요청했을 경우 500만 달러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향한 돈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건호씨를 소환 조사할지 검토하고 있다.

미국에 체류 중인 건호씨는 4월9일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2007년 연말과 노 대통령의 퇴임 무렵인 지난해 2월 등 두 차례에 걸쳐 베트남을 방문해 박 회장을 만났다고 밝혔다. 특히 두 번째 방문 때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씨가 동행한 것도 확인했다.
건호씨는 “2007년 연말과 아버지의 퇴임 무렵인 지난해 2월 베트남에 가서 박 회장을 만났다. 첫 방문 때는 MBA(미국 스탠퍼드대) 동문들과, 이후에는 연철호씨와 함께 갔다”며 방문 이유에 대해 “해외에서 어떻게 사업에 성공하는지 배우기 위해 박 회장을 찾아갔다”고 전했다.

하지만 건호씨는 500만 달러 의혹에 대해선 전면 부인했다. 그는 “박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연씨가 500만 달러 투자 문제를 얘기하진 않았다”며 “나는 박 회장의 돈을 10원도 쓴 게 없다”고 주장했다. 건호씨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수사와 관련해 “저희 아버님이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면서 “가슴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노 전 대통령 역시 4월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사과글에서 조카사위 연씨에게 건네진 500만 달러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건호씨가 작년 2월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인 연씨가 베트남에 있는 박 회장에게 찾아가 사업자금 500만 달러를 요청한 자리에 함께 있었다는 정황이 포착되고, 건호씨 역시 연씨와 함께 박 회장을 만났다고 시인한 만큼 검찰 소환을 피해갈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우리와 상관없다”

박연차 게이트와 관련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한 그의 일가가 이처럼 무너져 내리기 시작하자, 민주당은 발 빠르게 노무현 전 대통령과 선 긋기를 하고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복당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탄력을 받기도 했었지만, 최소한 노 전 대통령과 관련해서만큼은 더 이상 그런 주장을 찾아볼 수 없게 됐다.

4월8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송영길 최고위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재임기간 중에 정상문 총무비서관을 통해 수억의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백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주고 있다”며 “당혹감을 감출 수 없다. 불행한 일이다”고 강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자살사건을 통해 우리가 느낀 것은 당시 대통령이 형을 일방적으로 옹호하고 문제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해 상당히 국민정서에 어긋난 태도를 보인 것이 문제”라며 “이 부분에 대해서도 현재 명예훼손 관련 논란이 있지만 정중한 사과가 필요하다”며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에 대해서도 불필요한 옹호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3번 구속, 3번 무죄’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박주선 최고위원 역시 이 자리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상문 비서관을 통해 10억을 받았다는 자백의 글을 보고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 같은 충격과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기왕에 검찰은 이 사건을 한점 의혹도 없이 성역이나 예외 없이 철저히 수사 진행해 국민에게 진상을 공개해주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노건평씨와 이상득 의원 간 빅딜설 의혹에 대해 보도한 <시사저널>을 인용해 “2007년 12월경 대선이 진행될 무렵, 노 대통령 측과 이명박 후보 측이 만나 BBK 수사와 관련해 청와대가 개입하지 말고 이 대통령은 로열패밀리를 보장해 달라는 빅딜설이 보도됐다”며 “이것이 만일 사실이라면 권력을 개인의 노리개로 삼는 희극일 뿐 아니라 권력을 짓밟고 권력에 춤을 추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국민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하게 비난했다.

나아가 박 최고위원은 “권력에 의해서 엄정하고 철저하게 진행되어야 할 수사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하고 덩달아 로열패밀리의 범죄행위에 대해 역시 보호·보장 해달라는 빅딜이 있었다는 것은 국민을 업신 여기고 법치를 파괴하는 국기문란 행위로 철저한 수사해야 한다”며 “범죄사실이 확인되면 응징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건국 이래 대통령 주변의 친인척 비리가 끊이지 않고 전직 대통령이 비리로 검찰수사를 받고 형사처벌 받는 악순환이 진행되는데 이제는 대통령의 비리나 친인척 비리에 대해 특별 감찰기구라도 설치해 사전 예방조치를 강화하고 가중처벌하는 특별법 개정을 검토할 때가 된 것 같다”며 “이점에 대해 당론을 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의원들 개개인별로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손 긋기에 나섰다. 천정배 의원은 이날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어쨌든 박연차씨의 뭉칫돈이 적어도 대통령 부인께 건너간 것만큼은 지금 확실해진 것 아니겠느냐”며 “법률적으로는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무슨 용도로 또는 그 돈을 주고받았느냐 하는 것들이 밝혀져야 된다”며 성역 없는 수사를 주문했다. [e중앙뉴스 기사제휴사=브레이크뉴스]
저작권자 © 중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